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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해가 뜨면 너랑 식물원에 가고 싶어


언젠가 네가 그만 살고 싶은 듯한 얼굴로 나를 봤던 걸 기억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어. 네가 계속 살았으면 좋겠는데 고작 내 바람만으로 네가 살아서는 안 되잖아. 살아가려면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들이 있어야 하잖아. 울다가 잠든 네 모습을 한참 봤어. 아침이면 일어나고 싶은 생을 네가 살게 되기를 바랐어. 왜냐하면 나는 너 때문에 일찍 일어나고 싶어지거든. 일도 하고 너랑도 놀아야 해서 하루가 얼마나 짧은지 몰라. 네 규칙적인 숨소리를 들으며 이 책의 마지막 시를 읽었어. 일부를 옮겨 적어볼게.


(…) 그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다

한 번은 이제 태어나나 보다 하면서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다가

생각한 대로 잘 되지 않았다

한번은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이리 도망치고 저리 도망치다가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구나 했다

지난번에 태어났을 때는 불편한 게 너무 많았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많이 나아졌죠

그래도 어떤 건 옛날이 그리워요

한번은 너무 금방 다시 태어나서

내가 살던 집이 생각이 나더라고

집에 가고 싶어서 악을 쓰고 울었지

그러면 엄마가 와서 젖을 물리고

나는 혀로 밀어내고

두고 온 사람이 보고 싶어서

울다 까무러치고, 울다 까무러치고

그래서 그다음에는 너무 금방 다시 태어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도망치고 그랬던 거지

한번은 한참을 죽어서 있다가

당신도 죽었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함께 마루에 앉아 저녁을 먹었던 거

손을 잡고 걸었던 거

늙은 몸으로

젊은 몸으로

한 이불 속에 누워 있었던 거 (…)


잠든 너랑 덮은 한 이불 속에서 나는 조금 울었어. 이 시집이 고단하고 슬퍼서.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닐 거라서. 끊임없이 지나가는 동시에 반복되는 생들 속에서도 어떤 사랑은 자꾸만 기억이 난다는 게, 기억이 나서 울음이 난다는 게, 꼭 전생에 그래봤던 것처럼 이해가 되었어. 그리고 너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게 되었어.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우리는 한 생에서도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날 수 있잖아. 좌절이랑 고통이 우리에게 믿을 수 없이 새로운 정체성을 주니까. 그러므로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었어. 다시 태어나려고, 더 잘 살아보려고, 너는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도 몰라. 그러느라 이렇게 맘이 아픈 것일지도 몰라. 오늘의 슬픔을 잊지 않은 채로 내일 다시 태어나달라고 요청하고 싶었어. 같이 새로운 날들을 맞이하자고. 빛이 되는 슬픔도 있는지 보자고. 어느 출구로 나가는 게 가장 좋은지 찾자고. 그런 소망을 담아서 네 등을 오래 어루만졌어.


해가 뜨면 너랑 식물원에 가고 싶어. 잘 자.


 / / 이슬아,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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