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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네이트판] 시어머니를 견딘자의 경험담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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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삭이 다되서 내시모같은 시모 조심하라고 적어본다.

친구한테 이야기하듯 편하게 쓸까한다.
신경쓰는게 매우 귀찮아서.

임금님귀는 당나귀귀 심정이니까 까지는말자.
이러고 산 나는 속이 시원하겠냐고.
나도 날보고 미친년이라고 이불킥하다 쓴다.
진짜 나처럼 참는 등신들은 하지말라고.

벌써 나이가 40대에 진입했다.
나는 20년전에 결혼했다.
어렸고, 친정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고,
남편이 일도더하고싶고 놀고싶은날 악착같이 주저앉히는
몇가지 사건을 일으키며 세기의 로맨스 코스프레를 해준덕에
나의 험난한 시댁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남편은 전역직후 알고지내던 나를본후 내리 공을들였다.
막내였기에 더 이기적이었고,
모든 아들들이 그렇듯 결혼후 효자모드에 들어갔다.

그때시어머니 나이 50대초반.
김장이 시작이었다.
시집에만 다녀오면 나는 그다음날 몸살로 출근을못할정도로
부려져야했고,
남편이 자리를 비우면 악착같이 괴롭히는 시모덕에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각해져갔다.

거기다 친정부모둘다 교대로 질병과 사고로 입원해서 수발을 들기까지 해야했던나는
하루 세시간을 겨우자며 두분회복을 도와가며 일만했고,
시부모는 자기들아프면 나보고 대소변받고 수발들으란소리를
수십번해댔었다.

내가왜.
너네들도 딸있으면서.
우리집도 딸들이 하는건데 왜 내가 해야하냐고 따지려했지만
남편은 그냥넘어가라고 소리치며 내입을 막아놓고
제부모의 패악들은 들으라고 했다.

사촌시숙이 죽고 그 상치르는곳에 다녀오던날은
내가일찍죽으면 아들재혼시켜야하고
아들이 일찍죽으면 너는 절개를 지켜야한다던 말을듣고
오기를 부리며 그소리 아가씨한테 꼭 전해주마고 했었다.

원래성질이 없던애가 아니었던지라
남편이 원하는 노예며느리까지는 지팔지꼰한 내죄니까 견뎠는데
개소리까지는 견디는게 힘들었다.

웃긴건 시모란인간은 입이 활어였다는거다.
지금도 온갖곳 다니며 거짓말하며 지가 세상에서 제일좋은 시모인척을 한다.
나는 그래서 대놓고 사람이 솔직해야하는거라고
가식의 탈을 그자리에서 벗기다못해 탈탈터는 못된며느리가 되었지만,
내가 당한걸 누가 다 참을수 있을까싶어서 잘못했단 생각은 안든다.

시아버지 병수발 나시켜놓고 지가했다고 뻥치기,
사고로 입원해서 아파죽어도 불러낸인간이 할짓인가 싶었다.
나는 치매수발을 오롯하게 지원도 못받고 해냈었다.
그덕에 허리건강과 관절건강을 잃었다.

시댁온갖행사에 강제로 끌려가기.
곱게 가는성격이 아닌걸 안 다음부터
나를 악착같이 망치고 쪽팔리게 만들어서라도 끌고가야하는 시모였다.

남들에게 난 며느리 이렇게 버릇들였다고 꼴값떨려는 목적이었다.

일시킬자리가있으면 회사에 찾아와서 깽판을 부려서라도 날 끌고갔다.
산일부터, 집안 어른들 장례식장마다 불려갔고,
결혼식이나 잔치엔 부르지않았다.
내가 일을 해야할곳엔 내가 아무리 바쁘고, 아무리 힘든사정이 있어도
친정에가서 어거지를 써서라도 날 끌고갔다.

결국 내가 시댁찬장의 접시들을 다 집어다 깨버린 뒤에야
남편도 지엄마에게 성질을 부렸다
내가 어머님때문에 고생한만큼 다 부셔버리겠다고 했더니
모르는게아니라,
엄마성격이 거지같아서,
니가 참아주니까 우리다편해서 너힘든걸 잊었단다

사람이 한번쯤 미친년을 해야 알아듣는건 개같은시댁들의 공통사항인거같다.

시댁식구들은 내게 이상한 열등감도 있었다.
어린나이에 못하는게없이 척척해내는게 신기하고 짜증도 나는거까진
이해했다.
그게욕먹을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지들은 하지도 못하면서 트집거리 찾아가며 괴롭히기 일쑤였고,
내가 하던걸 작정하고 한번씩 미뤄버리면
전화로 난리쳐서 전화기부셔버린적도 있었다.
해도지랄 안해도 지랄... 어쩌란거냐고.


난 친정에서 온갖걸 다 하고컸다보니,

웬만한 40~50대 주변언니들하고 이십대때부터 코드가맞았다.

내가 일하다 성질이 시댁때문에 더러워지면

데리고 나가서 달달한거 사먹이던 언니들이었다.


음식해서 나눠먹고, 안쓰는거 바꿔쓰고 나눠쓰면서

잘지내던 언니들은 성질값하느라고 니가 더 애쓴다고했었다.

트집잡히는걸 죽기보다 싫어해서 이악물고 해내는게 내성격이다보니

언니들은 너그러다 병난다고도 했지만

시댁의 패악들을 지켜보던 언니들은 그냥 다독이기 바빴다

언니들은 깐깐한 시댁을 아는만큼 어린게 고생한다고 더 잘챙겨줬다.

그걸보는 시어머니는 너는 나한테도 저렇게 곰살맞지그러냐는 소리를

언니들이 듣고 기가막혀하곤 했다.


내가 곰살떨어도 욕하신분이 할말은 아니었으니까.


나쉬는날은 어떻게든 불러내서 당신알바하는곳에서

무료노동력제공이라도 하라고 강요당하며 산걸

주변언니들은 다 알고있었고,

내가 쇠약해져갈수록 시어머니는 건강해졌다



그러니 내가 굳이 말안해도 나의 헬시댁은 유명해져갔다.


나의 반란은 서서히 진행된게 아니었다.

핸드폰의 녹취기능은 스마트폰이 나온이후부터 가능했다.

그시기부터 시댁의 온갖폭언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변하지않으면 저 미친언변에 나만 죽어날일은 자명했다


내가 쓰러지기 시작하고

남편은 내폰의 녹취들을 듣게되었다.

언니들중 한분이 남편올때까지 내곁을지키다가

재폰에 녹취있으니까 찾아들으라고 하고갔다고 한다.


남편은 그렇게 처음으로

카톡에 시짜들이 내게한 폭언과 욕을 보게되었다.

우리엄마가 그럴리없다던 남편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믿을수가 없다는듯이 다시 듣고 밤을 새가며

그모든 내용들을 파악해갔다.


그간 내게 갈취해간 돈에 관련한 이야기까지.


내가 그렇게까지 당해야했던건

애를 못낳아서 였다

유산이 너무 잦아져서 습관성유산을 치료하려고

별짓을 다해온걸 아는 남편으로선

치를 떨었을만한 일이었을거였다.

그따위로 부려지는데 애가 유지되는건 내가봐도 기적이

열두번일어나야 가능한일이었던것도 사실이었고.


누나와 형들부터 전쟁하기 시작했고,

시어머니는 죽어버린다고 쇼를 했지만

내가 시한부가 될거란 소리까지 의사에게 들어야했던

아들을 이길순 없었다.

처음에 이야기했던것 처럼 저인간은

나와 단둘이 있는시간만큼은,

가족들의 개입으로 다툼만없으면 세기의 러버였으니까.

그래서 친정식구들도 내고생이 안타까워 사위, 제부를 욕하다가도

친정에 잘하고 나한테 개인적으로 하는걸보면

흠잡을 곳이 없는사람이었다.

저놈은 미워도 욕도못하게 잘한다고.

그따위 부모밑에서 어떻게 저런애가 나온거냐고.

그러다보니

내가 이혼을 단한번시도하고 더는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부모 둔 걔도 얼마나 힘들겠냐는데,

저기요...본인들딸은 생각안하셔요? 싶지만,

팔순향해가는 노인네들하고 말해봤자라는걸 내스스로 잘알기에

포기한것도있었다.


시어머니는 그런아들에게 마누라냐 엄마냐했다가

저만나서 고생하고 망가진 아내가

자기엄마와 가족들탓인걸 알고 화가난 상태에서도 분위기파악 못하다가

세상 둘도없이 멍청한 효자아들을 잃은순간이었다.


친정부모조차 나를 안아준적이 없기에 시어머니는 나를 더 막대했었다.

그때계기로 시댁이 어떻게 날 대했는지 알게된 친정역시

남편에게 처음으로 화를 냈고

남편은 몇년간 시어머니를 차단해줬을만큼 나에게 막대하는걸

막으려했지만,

노인네들 아프면 절연도 소용없는거였다.


시어머니는 절연한걸 풀고 아들이 화가 가라앉자 더 지능적으로 날 괴롭혔다.


그러나 나도 그때의 어린내가 아니었다.

돈에 관련된건 영수증을 첨부하고,

내 하루 평균 급여를 계산해서 보여줬다.

시어머니의 억지로 인해 내가 일에 타격받고

시간을 빼앗길때마다 우리의 재산상 손실을 모조리 구체적 근거를 만들어갔다.


딸같다기에 딸처럼 굴어주겠다고 했더니 다신 그따위소릴 못한다.

난 우리엄마랑 진짜 3박4일 안지치고 안지고 싸울자신이 있다고 분명히 말한적이 있었다.

애는 낳아야한다고 돌려깔때마다 아들하고 이야기하랬다.

나죽어가며 낳는애면 안낳겠다고 한건 아들이니까.

살림트집잡으려해도 우리집냉장고가 당신집보다 칼정리가 되어있고,

옷장에 옷들하나도 헝클어짐없이 정리해뒀고

서랍에 줄서있는 옷들을 본뒤론

음식솜씨로 생트집을 잡았다


그래서 아들시켜서 음식하라고 하고,

아들이 한척하고 내가한거 알게하며 약을올렸다.

신경질내도, 내가 약오르는거 아니니까.



명절에 꿋꿋이 지내던 차례도 내가 명절에 바빠지니

서울자식들한테 가서 명절지내고 온단다.

시어머니 딴에는 나를 못부리니 짜증나서 겠지만

고마웠다.

앞으로도 쭉 그래라좀.


이십년을 가지라고 볶았는데 임신하고 3개월은 드럽게 괴롭혔던 지금이아이.

남편이 뒤집어 엎으니 또 찍소리못하고 당해놓고

징징거림을 딸한테 했다가 욕만먹은 눈치였다.

시누이가 미안하다고, 너 애쓴거안다고 고맙다고

아이쓸 물건이며 이것저것 내 아이 태어나들어갈 몫돈일부를

시누가 선처리했다.


엄마가 못된거 안다고.

니가 애쓴것도 안다고.

내가 부담된다 거절하니 남편한테 전화해서

내가 쇼핑에 찜해두고 일괄결재하려던걸

나 자는사이 다 공유해서 결재해서 보내고

나 다니는 병원에 큰돈들거 선결재까지 해둬버린걸

이주전에야 알게 되었다.


시어머니는 자기가 쓴것도 아니면서 불러서 생색내기에

내가 다 반품시키고 병원도 옮긴다고 해버리자 입을다문다.

지금 날 건드리는건 내새끼도 건드는거라고 했다.

어머님이 별도로 성의표시 제대로 안하시면

이번엔 저도 달리생각하겠다 했더니

아들한테 기껏 병원비 몇푼주겠다했단다.


그간 뜯어간게얼만데 내성에 차지않는건 당연했지만

남편은 일단 아이 낳고 생각하잔다.

지금생각이 많아지면 애한테 해롭다고.



곧 태어날 아이생각에 참고는 있지만,

나는 아직 시어머니를 용서는 못한다.

환자라서 봐주고 있는것일뿐이다.


남들앞에서 잘하는척 하는 시어머니를 둔 사람들에게 말하고자한건 딱 하나다.

말한대로 해줘버려라.

딸같다거든 딸처럼굴어주고

내가 안한 싸가지없는짓을 했다하거든 그대로 해줘라.

안해도 죽일년인데 하고 죽일년되겠다 했더니

입다물고 말조심하더라.


웃긴건 시어머니가 아무리 내욕해도,

아무도 시어머니를 안믿게 만든 나지만,

그 응어리는 평생가는거 같다.

남편이 처가집 말뚝이 아니라 장인어른 신발하나도 공손히 모시는 놈이

아니었다면

난 진작이혼했을거다.


그러니 참고 사는걸 참아본 나는권하지않는다.

내새끼도 그렇게 가르칠거고.


특히나 임신한며느리 질투하는 시어미들은 통화녹취가 최선의 답이다.

다행인건 내시모는 머리좋은척을 하지만 똑똑하지 못해서 내가 친 덫에 다 걸려주긴했다.

이제나는 좀더 나쁜 며느리가 되볼생각이다.

사실 지금까지 나쁜거였나 싶기도 한데 그분기준엔 내가 나쁘다니 나쁜셈치고,

더 나쁘게 굴 생각이다.


참고살지마.

이십년 참고살아봤는데 그거 나만 병생기드라.

마무리는 이쯤할게.



ㅡ추가.

일단 이혼못시켜 환장하신 분들 악플은 신고했습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혐오발언 사양하구요.


시어머니와 연을 다시 이은건, 전이성이 강한 급성암으로 큰 수술을 두번하고

지금은 회복이 되었지만 가족의 케어가 필요한시기여서 입니다.

가까이사는자의 죄랄까.

가까이 사는건 저희 뿐입니다.


시누이가 서울쪽에서 거의 케어를하고 수술하거나 치료할땐 거의 병수발을 들었지만

시어머니 시골분입니다.

아파트나 빌라에서 갑갑해서 못견디는 전형적인 시골사람이다보니

서울병원에서 일상생활이 조금만 가능한 정도로

회복이 되면 집으로 내려와서 아들한테 땡깡부리시더군요.


물론 이문제로 시누이도 어지간히 화내고 시어머니랑 싸웠지만

안듣습니다.

저 찾는거 못하게 하려고 다들 노력중이시구요.


아들들한테도 혼나도 더 성질부리는분이라는건 뭐 안봐도 뻔한거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그딴시어머니를 왜 참냐거든


내부모아플때 밤낮없이 남편도 나 운전하면 안된다고 운전해서 데리고 다니고,

응급실이든 어디든 쫒아가고,

어른들 부축다했는데,

시부모 아플때 나몰라라가 나는 안됩니다.

상대한테 받기만하고 안주는건 말안되는 불공정거래니까요.

아무리 잣같은 부모도 부모니까요...


다만 남편이 선그은건, 산후조리 마무리까지 저 괴롭히지말란거였습니다.

지금 몸 잘 회복해야 아이 클때까지 우리도 부모노릇해줄수 있는거라고,

몸약한사람, 건들지말라구요.

그래서 산후조리로 시비걸던거 원천봉쇄시켜놓고

백일이내에 애 볼생각도 못하고 싶으면 더하라고 싸우는데,

그자체도 지칠사람한테

제가 더이상 시어머니랑 뭘 지금 하는것도 오히려 말들을수 있어서

그냥 두는겁니다.


연을 못끊고 다시이은 이유는 이쯤이면 밝힐만큼 밝힌거 같구요.


남편이 어려서 몰라서 했던 행동들에 대한건, 트집잡지마세요.

제가 어린나이 시집간만큼 남편도 어렸습니다.


현재 40대 남자들 중 제 시댁같은 부모형제를 둔 경우

제남편보다 쓰레기인 경우가 많습니다.


마누라가 지엄마한테 쳐맞아도

지켜만보는 놈들도 있는세상에.


본인가족들의 가해정황 알고부터 쭉 싸우고있고,

그게 하루이틀이 아니라 몇해째 입니다.

그거 쉬운게 아닌걸 누구보다 잘알고 있습니다.


저 임신한 이후론 마누라랑 애지키겠다고 이틀에 한번은 싸우는 사람 뭐라고 하고 싶진 않습니다.

몰랐다고 울며 사과하고 그뒤론 악착같이 내편이 된사람을

이제와서 남혐하시는 분들 취향대로 이혼안했다고 무시하면서 비꼬시는 분들이 있더군요.


혐오는 혼자하세요.


전 겪어도 안보고, 살아도 안보고 노력도 안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을 혐오하니까요.

https://m.pann.nate.com/talk/365970256?currMenu=category&page=5&order=N



ㅡ 추가 2.

자세한걸 못적은건.
누군지 알수있음 상태라서임.
흔한케이스는 아닐정도로 당한건맞으나,
난 견뎠다고 표현하고싶으니 부정적인건 알겠는데
적당히했음 좋겠음.

차마못적겠는 것중에 몇가지를 추려서 추가하자면,
칠거지악이라고 들어봤음?
시부모는 애못낳는다는 이유로
이말을 친정에가서 퍼붓어대며 내가 한적도없는 누명을 씌우는게
가능했던 미친 말발의 소유자들이었고,

친정은 이조시대 뺨치는 유교사상집안임.
시댁에서 처음 칠거지악운운했을때
내가 이혼생각을 하고 운을떼자
자식셋딸린 돌싱 후처로라도 들어앉히겠다던 소리를들었음.
나는 내인생 살면 안되는거냐고 했더니
그럴거면 내손으로 죽이겠다는 분들이었음.
다른가족들은?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않았음.
그때 내나이 이십대였음.
그리고 어려서도 별로 유복하게 자라진못한 상태에서
집안에 우환이 있었고,
나는 긴시간 학대를 당한 대상이기도함.
어린나이에 이런저런 남편의 약속들을 믿고
탈출한 이유이기도함.

그리고 나는 모친조차도 부친께서 날 유난 이뻐한단이유로
이간질하는걸 당해본사람임.
그게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음은 분명한게
내가 모든사실을 알고 무너질때 곁에있던사람들이
같이 울며 기막혀할정도였음.
내가 말을 다못하는이유임.
내가 누군지 탈탈터는것과 같은격임.

남편한테 환장해서라기보다, 세뇌어쩌고보다
우리둘다 서로가아니면 방법이 없었던것도 있었음
남편이 싹싹 빌었던이유도,
지잘못을 모르는 놈팽이면 할수있는부분이라고는 생각안됨.
그리고 지금 까지 남편의 전쟁은 안끝나고 현재진행중임.
내가보기엔 애가 태어나면 부모에게
자라면서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뜻을꺽이고
학대당했던 남편으로선 더 격앙될가능성이 커보임.

우리둘다 남보기엔 성적도, 성과도, 경력도, 근성도 좋은사람들이란
평가를 들어왔었음. 그래서 웬만한 직장에도 잘들어갈정도는 됨.

그러나 가족사가 둘다 심하게 뒤틀린 케이스였음.
그래서 가족들을 안보고 살고자했으나,
남편은 누나와 형에게 약하고 난 부친에게 약함.
그래서 양쪽다 절연이 실패하는 일들이 번번히 일어나고 있는 상태임.

아이를 가진뒤 친정과는 관계가 급격하게 회복이되서
좋은 관계가 되었고
입덧으로 긴시간 고생하는 내내 음식을 따로 준비해서
계속대실정도론 풀렸음.


시댁과는 시어머니 성격이 저렇다보니 시누이가 고생해서
풀어가는 중인데,
나는 사실, 도리만하자 주의인데,
ㅡ도리라는게 장애등급, 요양등급, 보호자등록, 응급시 연락할 보호자 이런정도의 케어임.
이게 시어머니를 안거치고도 뒷수습이 가능한 경우가 많아서, 뒷처리만 해주는것도 많이 하는거라 생각함.

시댁에서 요구치가 높아서 남편이 안된다고 시댁을 막고있는 상태임.
나한테 전화를 하셔도 내가 남편이 없는 시간대엔 아예 연락을 안받기때문에 싸움이 되고있진 않은지 오래됨.
가스라이팅... 이다 세뇌다...
어려서 부터 서른살 좀 넘어서까지는 꾸준하게 당한게 맞음.
가해자가 한둘이어야 뭐라고 할건데, 너무 많은상태라.

근데 내가 시댁때문에 아프고 사경을 좀 헤매고 난 이후로
싸움의 방식이나 대화의 방식자체가 바뀌면서
남편과 정말 사소한것까지 역지사지를 하며 풀어나간 시간이 있었음.
남편은 그때 진짜 사과를 매일몇번씩 했었던거 같음.
내가 나중엔 그만하라고 할만큼.

이미 건강도 무너지고, 여자로서도 사망이다라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내가 종교이고, 내가 살이유라는 사람곁이 편하지 다른 부담을 안기 싫은게 당연한거였고,
누굴만나서 또 내 삶을이해하게 하는것도,
누군가와 함께 서는것도,
그렇다고 건강이 허락해서 홀로서기를 하는것도
내겐 불가능한 일이었음.
현재도 건강은 원활한 상태가 아님.

대충 증상을 말하자면 관절일부도 제구실을 못하고,
출산자체도 부담이 커서
고관절에 이상이 올수있어서 아이도 제왕절개로 낳기로 이미 예약을 마친상태임.
혈압은 아이가진뒤 정상이 되어가고있지만,
극단적으로 낮은편이었고,
여러가지 위험질병의 수치가 높아져서 건강관리를 일년이상 진행하던중
아이가 정말 온갖피임을 뚫고 들어선거라

아이생기고 초반에 진심으로 고민을 많이했으나
별별 고민을다해봐도 이번이 아니면 내가 애를 낳는건 불가능한걸로
판단이 되었고
이번엔 정말 낳자 상태가 된것임.

다행이 어떤 기형이나 유전질환의 증상들은 현재 검사결과 나타나지 않았음.
심하게 건강해줘서 감사한 상태임.

정신건강은 악플에 도닦는 인간은 못되서 발끈은함.
그조차 내탓이라거든 웃기시네소리가 더나오는 비틀림은 있음.
부정 안함.
근데 나도 살려고 그정도 성질은 있는거라,
고칠생각은 없음.
지인들이 내성질은 정당방위랬음.

좋은뜻으로 나처럼 참고사는 누군가의 글을 보다가 쓴글이었음.
참다 내꼴나지말라고.
애당초 제목부터 사이다가 될수없는글인데
사이다 사연을 바라면 시짜들글은 안읽는게 정답임.
고구마 먹여서 미안하지만 아직도 고구마를 찌는 사람들에게
내꼴나지말고 도망치란것도 주제넘는다고 할거면
남의인생사 가지고 감나라배나라 하는것도 주제넘는건 아닌가 하고 생각함.

치료받으라는 댓글있던데,
내 담당의는 이미 내가 남한테 해끼치고 산게 아니니까
내의지대로 살아가면 된다고했고,
나는 그뒤로 간간히 고민만 상담하고 잘지내고 있으니 치료운운해가며
사람 뭉개는 것도 매우불편함.


왜 글쓴사람이 서두부터 밝혀둔거 보면모름?
불편하다 싫다는데,
본인들이 읽으면서 성질인지 모르겠음.
30대까진 내인생 이해하는게 어려운걸 모르는게 아닌데,
비난못해 환장할일은 아니라는게 내생각임.
그냥 나처럼 살지말고,
나처럼 재능도 인생도, 꿈도 모조리 꺽이지말고
당당하게 살으라는게 욕먹을일인가 싶음.
글쓴 목적은,
나처럼 징그러운 시짜를 만나도 싸우고 할말하고 살란거였음.

그리고 님들은 모르는 프로 악플러들도 존재하는건 사실임.
저 베댓들 써진시간들을 잘보기바람.
딱 11~1시 이사이에 나타나는 남혐자들의 말투임.
정황이 명확한데 아니라고 우기기엔 늘 해온 레파토리에서 한치도 안벗어남.
몇달쉬었다오면서 닉도 바꿨는데,
참 징하다 싶으니까 화도 내는것임.

여튼 더는 쓰기도 지치고,
댓글 보기싫어서 그냥저냥 두다가 글삭할거라.
여기다시오는건 또 언제가 될지몰라도,
신상털이 당할정도로 자세히 쓰긴 싫은사람은
그만하고 가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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