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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역겨움 주의) 강간이 왜 나쁜지를 고찰(?)한 남자

머리말

이 글은 규범 윤리학이 아니 기술 윤리학에 대한 글이다. 즉 강간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설명하려고 하는 글이다. 규범 윤리학과 기술 윤리학의 의미에 대해서는 『과학적 윤리학을 위하여 – 진화론적 접근』을 참조하라.

나는 사람들이 강간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아직 전혀 해명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해명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 글은 해명이라기보다는 문제제기에 가깝다.

여러분도 한 번 이 난제에 도전해 보길 바란다. 얼핏 생각해 보면 아주 뻔한 것 같은데 차근차근 따져보면 매우 대답하기 힘든 문제다. 강간 금지라는 규범이 있는 이유를 해명한다면 아마 규범의 진화의 상당 부분이 해명될 것 같다.



모든 문화권에서 강간은 나쁘다고 생각한다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그 성을 너희 손에 부치실 터이니, 거기에 있는 남자를 모두 칼로 쳐죽여라. 그러나 여자들과 아이들과 가축들과 그 밖에 그 성 안에 있는 다른 모든 것은 전리품으로 차지하여도 된다.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 원수들에게서 빼앗아주시는 전리품을 너희는 마음대로 쓸 수가 있다. (『성경』, 신명기 20:13~14, 공동번역 개정판)

전리품을 마음대로 쓰는 것에는 여자와 자는 것도 포함될 것이다. 만약 여자가 성교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강간이 될 것이다. 자기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자신의 남편을 죽인 남자들과의 성교에 흔쾌히 응할 여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구약 성경의 신은 강간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확실히 알 수는 없겠지만 구약 성경이 쓰여졌을 당시의 유대 문화권에서는 강간 자체를 죄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른 나라 여자 또는 노예인 여자 또는 중범죄를 저지른 여자를 강간하는 것을 죄악시하지 않았던 문화권이 여럿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자기 부족의 죄 없는 자유인을 강간하는 것을 허용하는 문화권은 내가 알기로는 없다. 보호 받을 자격이 있다고 여겨지는 여자를 강간하는 것은 모든 문화권에서 금지된다. 앞으로 이 글에서 강간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보호 받을 자격이 있는 여자를 강간하는 경우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모든 문화권에서 강간을 금지하는 것일까?



문화 결정론자의 설명 – 사회화

문화 결정론자들은 이 문제에 쉽게 대답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들은 “해당 문화권에서 강간이 나쁘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그 문화권에서 자라면서 사회화된 사람들은 강간이 나쁘다고 생각한다”고 답하면 끝인 줄 안다. 하지만 이런 설명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사람들이 사회화되면서 해당 문화권의 규범을 무조건 받아들인다는 가정은 별로 그럴 듯하지 않다. 만약 어떤 문화권에서 “강간은 나쁘지 않다”고 가르친다면 사람들이 강간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될까? 만약 어떤 문화권에서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강간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면 어떤 남자가 “이런 이번 달에는 강간을 하지 못했군”이라고 중얼거리면서 죄책감을 느낄까? 내 생각에는 별로 그럴 것 같지 않다.

둘째, 왜 모든 문화권에서 강간이 나쁘다고 가르치는지를 해명해야 한다. 다른 면에서는 너무나도 다른 온갖 문화권들이 왜 강간이라는 문제에서는 그렇게도 일치된 의견을 보이는 것일까? 그냥 우연이라고 답할 수도 있겠지만 문화권의 수가 엄청나게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별로 설득력 있는 답변이 아니다.



강간은 고통을 주니까?

어떤 사람은 강간이 강간을 당한 여자, 그 여자의 친족과 친구에게 고통을 주기 때문에 금지되는 것이라고 설명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에도 문제가 많다.

첫째, 정정당당하게 진행된 게임에서 져도 고통스럽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정정당당한 게임에서 졌을 때 패배의 고통을 더 느끼는 사람도 있다. 왜냐하면 상대가 반칙으로 이겼다면 자존심에 상처를 덜 받는데 상대가 정정당당하게 이겼다면 결국 자신의 실력이 상대보다 못했다는 점이 만천하에 공개된 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게임에서 이기는 것을 금지하는 문화권은 없는 것 같다.

비슷한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연적에게 패배할 때의 쓰라림은 매우 클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연적이 어떤 여자의 사랑을 받는 것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문화권은 없다. 즉 남자 A와 남자 B 모두가 여자 C를 몹시 사랑하고 있었는데 C가 A를 선택했다고 해서 A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A가 무슨 비열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인간사는 경쟁의 연속일 수밖에 없고 경쟁에는 패배자가 있기 마련이다. 물론 패배의 아픔이 있다. 하지만 승리 자체를 금지하는 문화권은 없다.

둘째, 강간을 당하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가정되고 있다. 문화 결정론자들은 왜 강간을 당하는 것이 즐겁지가 않고 고통스러운지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도 위에서와 비슷한 문제가 생긴다. 만약 강간을 당하는 것은 즐겁다는 식으로 가르친다면 여자가 강간 당하는 것을 즐기게 될까? 모든 문화권에서 강간 당하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우연 때문일까?



강간은 부당하게 고통을 주니까?

강간이 나쁜 이유는 부당한 고통을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설명이 아니다. 이것은 순환 논법이다.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것은 “왜 강간이 나쁜가?” 즉 “왜 강간이 부당한가?”이다.

사람들은 왜 강간을 정당한 경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우리 정정당당하게 남의 딸과 누이를 강간하자”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 것일까?



금지의 정도

사람들은 강간이 나쁘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매우 나쁘다고 생각한다. 또한 강간(성폭행)과 성추행은 명시적으로 또는 암시적으로 구분되며 강간이 성추행보다 훨씬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삽입 성교를 강제로 하는 것이 강제로 엉덩이나 가슴을 만지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화 결정론자들은 이 두 가지 현상도 설명해야 할 것이다. 왜 사람들은 여자에게서 음식을 강제로 빼앗아 먹는 것보다 여자를 강간하는 것이 훨씬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왜 강제로 한 키스보다 강제로 한 삽입 성교가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것도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일까? “사과를 하나 빼앗아 먹는 것이 강간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고 가르치면 사람들은 정말 그런 식으로 생각할까?



강간 당했을 때의 고통 – 적응론적 설명

진화 심리학자들은 여자가 강간을 당했을 때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는 강간 당하는 것이 적응적 손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강간을 당하면 번식 경쟁에서 여러 가지로 불리해진다.

첫째,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경우 강간으로 태어난 자식을 혼자 키울 위험이 있다. 현대 복지 사회와는 달리 우리 조상들이 진화했던 사냥-채집 사회에서는 여자가 혼자 자식을 키우면 자식이 제대로 크지 못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둘째, 결혼한 여자가 강간을 당한 경우 남편의 미움을 살 수 있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강간범의 유전적 자식은 자신의 유전적 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아내와 이혼하거나 자식을 덜 보는 것이 적응적인 전략이다. 사냥-채집 사회에서는 피임 수단도 낙태 수단도 유전자 감별 수단도 없었다.

셋째, 강간을 한다는 것은 여자가 성교를 거부했다는 뜻이다. 여자는 대체로 더 못생기고, 덜 똑똑하고, 부실한 남자와의 성교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강간을 당해서 임신을 한다면 나쁜 유전자(bad good, 번식 경쟁에 불리한 유전자)를 강간범으로부터 얻을 가능성이 크다.

넷째, 강간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여자의 평판이 나빠질 수 있다.

다섯째, 성교로 병을 옮을 수 있다.

이런 적응적 측면의 손해는 막대하다. 강간을 한 번 당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손해는 사과를 하나 빼앗겼을 때의 손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따라서 여자는 강간 당하는 것을 몹시 괴로워하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이 진화 심리학자들의 생각이다.



강간에 대한 도덕적 판단 – 적응 가설

나는 여자가 강간 당하는 것을 괴로워하도록 설계되었다고 믿는다. 또한 사람들이 강간이 나쁘다고 생각하도록 설계되었다고 믿는다. 즉 강간에 대한 고통과 강간에 대한 도덕적 판단 모두 자연 선택에 의해 주조된 인간 본성 즉 적응(adaptation)이라고 믿는다. 물론 아직 충분한 증거가 쌓이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가장 가망성이 큰 가설이라고 본다.

남자들도 강간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최적화된 전략이기 때문인 것 같다.

첫째, 강간이 나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자는 자신의 딸, 아내, 누이가 강간 당했을 때 도덕적 분노를 느끼고 강간범을 처벌하려고 한다. 이런 처벌은 강간 억제 효과가 있다.

아주 조잡한 모델로 설명해 보겠다. 어떤 남자 A는 강간이 나쁘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친족이 강간 당했을 때 강간범을 처벌하려고 한다. 반면 어떤 남자 B는 강간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누가 강간을 당하든 말든 개의치 않는다. 그렇다면 누구의 친족이 더 강간을 당할 가능성이 클까? 물론 B의 친족이다. 그리하여 강간이 나쁘다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유전자가 선택된다.

둘째, 강간이 나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자는 웬만하면 강간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남자의 유전자에게 전체적으로 이득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강간을 시도했다가 된통 보복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강간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남자는 시도 때도 없이 강간을 시도하다가 조만간 맞아 죽을 것이다. 강간을 하면 직접적으로 보복을 당할 위험도 있지만 평판도 나빠진다. 평판이 나빠지면 왕따를 당해서 친구도 아내도 얻기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내가 남자가 전혀 강간을 하지 않도록 설계되었으며 가끔 일어나는 강간은 병리적 현상일 뿐이라고 보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 양심이 있다고 해서 항상 규범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양심은 규범을 항상 지키도록 하는 메커니즘이 아니라 규범 준수(또는 규범 일탈)을 적응적으로 조율하는 메커니즘이다. 즉 상황을 잘 살펴서 언제 규범을 지키고 언제 규범을 어길지를 결정하는 메커니즘이다.

강간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남자의 양심 메커니즘은 들킬 가능성, 보복 가능성, 임신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강간을 할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따라서 폐경이 지난, 부족장의 어머니를 남들 보는 앞에서 강간할 남자는 거의 없겠지만 고아 출신의 젊은 여자와 산속에서 단 둘이 있을 때에는 강간을 할 남자가 상대적으로 훨씬 많을 것이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인간 도리라는 기초 도덕도 몰라서 이런 글 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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