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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오컬트 [reddit] 아내와 작년에 산중 목장을 샀는데, 이웃이 독특한 운영법을 알려줬다 2, 빛

아내와 작년에 산중 목장을 샀는데, 

이웃이 독특한 운영법을 알려줬다  

2, 빛

(My wife and I bought a ranch in the mountains last year, and my neighbor had some interesting suggestions on How To Manage Our New Land: The Lights)



대쉬와 함께 현관 앞에 서서 믿을 수 없는 심정으로 연못에 뜬 빛을 바라보았다. 저 상황을 설명할 그럴싸한 이유가 필요했다. 아니, 이게 누군가의 악질적인 장난이나 함정이기를 바랐다. 배터리가 내장되었거나 태양열을 이용한 램프는 아닐까? 하지만 둘러대듯 떠오르는 내 추측은 댄이 지난주에 해주었던 말에 의해 모두 밀려났다. 뉴스 하단에 주식 시세가 빠르게 지나가듯이 그가 해주었던 말이 빠른 속도로 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당황할 것 없어. 다만 하던 걸 꼭 멈추고 무조건 불부터 피워야 하네. 크게 피울 것도 없어.  물을 데울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해. 불을 피우면 빛이 사라질 거야. 처음 빛을 발견하면 불을 피우고 우리에게 연락하게. 빛을 보고 불을 피우지 않는다면, 그리고 산에서 드럼 소리가 들린다면 당장 사샤와 함께 여기를 떠나야 하네. 최대한 빠르게.  


대쉬는 여전히 털을 세우고 수목선을 응시하며 호흡할 때마다 낮게 으르렁댔다. 뭐 때문에 저렇게 긴장했지? 늑대? 곰? 퓨마? 아니면 들개일 수도? 대쉬는 자기보다 더 큰 포유류를 보면 짖는 편이었지 오늘처럼 털을 세우고 으르렁거린 적은 없었다. 하이킹 중에 곰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천천히 저물어가는 해 덕분에 빛이 남아서 집과 수목 경계선 사이에 펼쳐진 목초지에 다른 동물이 없는 것을 똑똑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내 개가 이렇게까지 불안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심장이 마구 날뛰는 탓에 전력 질주라도 한 것처럼 내 심장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대쉬으 불안감을 덜어주기 위해서 나도 모르게 녀석에게 자꾸 말을 걸게 됐다.


당황할 것 없어, 다만 불부터 피워야 하네... 


내 시선이 대쉬가 응시하는 곳과 연못을 오갔다. 내 시선이 연못으로 다시 돌아올 때마다 빛의 위치가 계속 바뀌어 있었다. 어두워서 착각하는 거겠지. 안 그래? 전쟁지 야간 순찰 경험도 많고 활 가지고 저녁 사냥도 많이 다녔기에 밤에는 뭐든지 잘못 볼 수 있다는 걸 잘 알았다. 특히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상황에서 뭐라도 튀어나오리라 예상하는 상황에는 더더욱 말이다. 생각하는 대로 상황이 따라가게 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그런 거다. 


결국 빛이 연못 안에서 7m 이상 이동한 것을 확인하고야 말았다. 눈을 비비며 심호흡하고 연못에 보이는 빛을 응시하다가 산마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연못을 보는 순간, 머리가 아찔해졌다. 망할 놈의 빛이 이번에는 연못 반대편으로 이동한 게 아닌가. 그래, 좋아... 망할. 마음속에서 공포가 서서히 조여오는 것이 느껴졌다. 치솟는 아드레날린 때문에 손에 감각이 점점 사라져갔다. 


댄이 했던 말을 다시 곱씹었다. " 빛을 보고 불을 피우지 않는다면, 그리고 산에서 드럼 소리가 들린다면 당장 사샤와 함께 여기를 떠나야 하네. 최대한 빠르게." 하. 실소가 터졌다. 내가 얼마나 긴장했는지 새삼 실감됐다. 공포가 섞인  소리  때문에 나도 모르게 예민해졌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산에서 불길한 드럼 소리가 들리면 대체 얼마나 무서울까?'  


그 생각이 끝나자 갑자기 나를 돌아보게 됐다. 와, 인마,  진심으로  드럼 소리는 피하고 싶은 모양이구나. 아니, 지금 당장 드럼 소리보다 더 듣기 싫은 소리는 없으리라. 지금이라도 소리가 들려온다면 당장 트럭에 달려가 시동 걸고 겁쟁이처럼 내뺄 것이다.


심신이 급격하게 댄이 했던 말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기분이었다. 지금 내가 불을 피운다면 공포에 굴복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시인하는 꼴이 될 것이다.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냥 불 좀 피운다고 해가 될 게 있어?' 그러자 더 크고 적대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좆까. 여기는 네 땅이고 네가 소유한 지구의 일부란 말이다. 망할 민속 나부랭이는 혼자 처 놀라고 해.'


그때 대쉬가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녀석이 서 있는 현관으로 고개를 돌리자 나를 보는 대쉬가 보였다. 달래보려고, 아니 오히려 나 자신을 달래는 기분으로 개를 달랬다. "대쉬, 괜찮아. 진정해!" 이제 대쉬는 다리 사이로 꼬리를 말고 수목선을 바라보면서 뒷걸음질쳤다. 그러더니 부엌으로 이어진 문으로 전력 질주하는 것이 아닌가. 대체 뭘 보고 그렇게 놀란 것인지 확인하려고 수목선을 확인한 뒤 다시 연못을 봤다. 씨발, 또 옮겼잖아. 그리고 다시 수목선. 손과 어깨가 떨렸다. 나 지금  빛 하나 봤다고, 이상한 민속 괴담 들었다고  이렇게 무서워하는 거야?  


극도의 긴장이 서린 상황에 대처하는 훈련을 정말 많이 받았다. 아마 누구보다 더 많이 받았으리라. 여기저기서 총알이 쏟아지고, 우러러보던 인물이 겁에 질려서 비명 지르거나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는 나만의 주문을 외웠다. "심호흡하자. 어차피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일어날 일이라도 느끼지 못할 거다. 그들보다 내가 더 큰 위협이다. 당장 움직여. 심호흡하자. 어차피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내가 더 큰 위협이다. 움직이자. 심호흡..." 


닫힌 문에 대고 낑낑거리며 발톱으로 긁는 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대쉬의 저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내 개를 저렇게까지 겁에 질리게 만든 존재가 있는 수목선을 돌렸다. 내 주변 기압이 바뀌는 게 느껴지더니 당장이라도 토할 것처럼 입에 침이 고였다. 


그 순간 깨달았다. 개의 행동이 이상하거나 다른 이유가 있는 지도 모른다. 연못에 뜬 빛을 발견한 것은 1분 30초 전. 하지만 불을 피워야 한다는 강렬한 열망이 느껴진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본능적으로 불을 피워야 한다고, 내 영혼이 그것을 원한다고 느꼈다. 심지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내 자식과 손자의 삶이 그 망할 불에 달린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멍청하고 고집불통인 개새끼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유연하게 대처해왔다.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깝게 느껴지는 장작더미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손도끼 하나를 챙겨서 제일 작은 장작 6-7개를 챙긴 뒤 안으로 집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카운터에 놓인 쓸데없는 우편물 몇 개를 챙긴 뒤 부엌을 통해 거실 벽난로에 장작을 던졌다. 불쏘시개로 불을 피우고 덮개로 덮은 뒤 연통을 열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작은 장작 아래로 우편물을 구겨서 넣는 사이, 대쉬가 짖기 시작했다. 어깨 너머로 돌아보니 부엌에 우리가 방금 들어온 현관과 이어지는 문을 보고 마구 짖는 게 보였다. 뭐지,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대쉬가 이렇게 흥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문  바로 앞 에 뭐가 있지 않는 이상은. 본능이 당장 소총을 들고 밖으로 돌격하라고 외쳤지만 내 이성이 이겼다.   


나는 다시 난로 앞에 앉아서 가장 두꺼운 불쏘시개에 불을 붙이고 종이 쪼가리 밑에 넣었다. 하나 더, 또 하나 더, 그렇게 총 4개를 넣었다. 송진이 붙은 불쏘시개를 따라서 불이 붙는 것을 보던 중, 나도 모르게 부디 드럼 소리가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빌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손도끼로 장작을 더 작게 조각낸 뒤 종이 사이사이에 넣었다. 장작에 불이 붙는 것이 보이자 도끼를 두고 바람을 불었다. 불이 제대로 붙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타닥타닥 소리 내며 타오르는 장작에 남은 장작을 넣고 심호흡했다. 대쉬는 이제 내 옆에 붙어서 나와 부를 번갈아 보며 잘하고 있다는 듯이 꼬리를 흔들었다. 


대쉬를 쓰다듬으며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사샤가 올 때까지 적어도 한 시간은 여유 있다. 저번에 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처음 빛을 발견하면 불을 피우고 우리에게 연락하게.  냉장고에 댄과 루시의 번호를 붙여놨기에 자석을 치우고 번호를 확인한 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니, 잠깐만. 이 사람들한테 전화하기 전에 일단 심호흡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본능은 계속 경계하라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주변을 잘 보라고 외쳐댔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게, 나도 모르게 점점 느슨해지는 게 느껴졌다. 슬슬 무서웠던 기분이 가셨다. 댄이 불을 피우고 나서 나가도 된다고 했던가? 사샤가 댄과 루시에게 받은 종이를 넣어둔 책상에 가서 꺼낸 뒤 '봄'과 관련된 내용을 찾고 쭉 읽었다. 그리고 이 문단의 마지막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불이 제대로 붙으면 빛은 곧 사라진다. 집안에서 남향에 달린 창문을 통해 아직 빛이 있는지 확인할 것. 만약 빛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불에 땔감을 더 넣어야 한다. 빛이 사라지면 곧 영도 사라졌다는 의미이므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불을 끄고 하던 일을 마저 하면 된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이라. 잘도 그렇게 하겠다, 댄.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웬 귀신 쫓는 행사를 해야 할 판인데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라니. 그 문장을 보자 화가 치밀었다. 아니, 어처구니없는 것에 정신이 팔리고 두려워한 나 자신이 쪽팔려서 부아가 치민 것일 수도 있다. 너무 화가 나서 손이 덜덜 떨렸다. 크게 심호흡하고 남향에 위치한 손님방 겸 서재로 향했다. 그 방에 딸린 창문이라면 연못을 바로 내다볼 수 있었다.


눈을 내리깔고 창문으로 다가가 창틀에 손을 얹고 밖을 내다보았다. 빛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그날을 통틀어서 가장 심오한 시간이었으리라. 


처음 빛을 발견한 순간부터 빛이 사라진 순간까지 내 존재가 갖는 모든 인지와 감정이 어찌나 격해졌는지, 이 '영'인지 뭔지 하는 거짓 나부랭이가  행여나  진짜라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가도 사라지고 말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 감정의 수고로움에도 불구하고... 빛이 사라졌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느꼈던 격렬한 안도감이라니. 인간이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감정의 대방출이었다. 그것도 긴장했던 신체의 피로감까지 한 방에 해결해주는, 그러니까 시원하게 소변을 갈긴 느낌과, 뙤약볕에 지쳐있다가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건물에 들어간 느낌, 그리고 체중이 한 7kg 줄어든 느낌이 한 번에 몰려왔다고 하면 이해가 되려나. 그 기분에 몸이 부르르 떨렸고, 거의 웃음이 튀어나올 뻔했다. 대쉬 역시 평소와 같은 상태가 되었는지 현관 옆에 서서 꼬리를 흔들며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 부엌으로 가서 댄 집으로 연락했다. 신호음이 몇 번 가더니 댄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댄? 저예요, 해리."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가 앉아있다가 막 몸을 일으킨 것인지 아니면 오래 서 있었는지 묘한 압박을 받은 듯 헐떡였다. 


"이게 누구야, 해리! 어떻게 지냈나? 이제 적응은 다 했고? 어때, 좀 안락한가?" 


"네, 잘 적응 중이에요. 저기, 다름이 아니라 아까 연못에서 빛을 봐서 연락했습니다." 


내가 문장을 끝내자마자 댄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은 피웠는가? 지금도 불 피운 상태지, 해리?" 


목소리를 조금 가볍게 내려고 했다. 그렇게 하면 이 헛소리가 조금은 가볍게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네, 빛을 발견하자마자 불을 피웠어요. 약속했던 그대로 했습니다! 지금은 빛이 사라졌으니 아저씨가 알려준 방법이 통했네요. 드럼 소리도 없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루시가 작게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게 들렸다. 곧이어 댄이 말했다, "그랬다니 정말 다행이군, 해리. 우리가 일러준 대로 해줘서 정말 고맙네. 혹시 우리가 잠깐 들러도 괜찮겠나? 오래는 안 있겠네. 그저... 처음 그걸 보면 얼마나 불안한지 알기 때문에 두 사람 확인차 들르고 싶다네." 


"사샤가 친구들과 저녁 약속이 있어서 오려면 아직 좀 기다려야 합니다. 저만 있어도 괜찮다면 언제든지 오세요." 


"알겠네, 그럼 금방 가지!"   


댄에게 던질 다음 질문을 생각하는 동안 갑자기 긴장한 중학생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말을 꺼내는 순간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저기, 아저씨, 뭐 하나 더 물어볼게요... 지금 제가 밖에 나가도 괜찮은 거죠? 빛이 사라지면 하던 걸 마저..." 


"그럼, 그럼. 빛이 사라지면 괜찮다네. 빛이 사라진 걸 확인하면 기분도 평소와 같아진다네. 아마 자네도 경험했으니 알겠지. 우리도 금방 가겠네!" 


전화를 끊고 그가 한 말을 곱씹었다. 댄이 옳았다. 나는 그것을... '느꼈다.' 대쉬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정말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이미 내 안에서는 이 망할 주술 나부랭이가 가지는 심오함과  심각성을 부인하고자 하는 마음이 꿈틀댔다. 이미 머릿속에서는 모든 계획이 이뤄졌다. 한방에 이 개소리를 끝내버릴 계획. 하지만 그중 일부는 댄과 루시가 여기 도착하기 전에 끝내야 한다. 30-30구경 소총과 전조등, 큰 조사등과 야외활동에 사용하는 카메라(사냥꾼이 동물 추적할 때 나무에 달아놓는 방수, 동작 감지, 야간 투시 기능이 있는 카메라)를 챙겼다. 카메라에 메모리카드가 있는지 확인하고 현관문을 통해 밤공기를 맞이했다. 


아까 대쉬가 으르렁댔던 수목선 방향을 쭉 살펴봤다. 아무것도 없다. 마당을 둘러싼 울타리 밖으로 향하는 문으로 나가서 연못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어깨에 소총을 대고 경계를 바짝 세웠다. 연못 옆에 사시나무가 조금 있으니 완벽할 것이다. 나는 주변에 있는 작은 나무에 카메라를 묶고 내장된 화면을 열어 구도가 괜찮은지 확인했다. 렌즈가 연못 끝에서 끝까지 완벽하게 잡아내는 것을 확인했다. 만약에 망할 노부부가 우리를 놀리기 위해서 연못에 불빛을 넣어둔 것이라면 장난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아침이 오기 전에 그걸 회수하러 올 것이었다. 나는 카메라 세팅을 끝내고 멀리서 댄과 루시의 차가 들어오는 것을 보며 집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주차하는 것을 보며 바비큐 그릴 뒤에 소총을 숨기고 우리 집으로 향하는 그들에게 걸어갔다. 


"반가워요, 해리! 댄이 마당 정문을 여는 동안 날 발견한 루시가 반갑게 인사했다. 나는 댄과 악수하고 루시에게도 손을 내밀었으나 그녀는 나를 포옹하며 이렇게 말했다, "옳은 일을 해서 정말 기뻐요, 해리. 우리의 말을 들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그녀의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지만, 일단 두 사람을 집 안으로 들였다. 오랜만에 등장한 손님에 잔뜩 신이 난 대쉬가 우리 뒤를 총총 따랐다. 댄은 장작이 잔뜩 들어있던 천 가방을 현관 장작더미 위에 놓으며 말했다. "혹시 바빠서 장작이 부족할 수도 있어서 가져왔어," 그는 이렇게 말하며 미소지었다.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아까 겪었던 말도 안 되는 현상으로 끓어올랐던 내 분노가 다시 한번 부글대기 시작했다. 


부부는 마실 것도 마다하고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불편해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저런, 정말 제대로 둥지를 트셨군요, 너무 보기 좋아요," 루시가 진심 어린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루시." 


댄이 나를 보더니 물었다, "자네, 아직도 내 말을 100% 믿는 게 아닌가?" 이번에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애매하게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젓는 순간 루시가 끼어들었다. "해리, 아직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에요.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런 걸 경험하는 심정이 어떨지 감히 상상도 안 돼요. 하지만 굳이 그 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겠죠. 이제 곧 여름이 와요. 일단 여름에 일어날   을 겪고 나면 결국은 우리 말을 믿게 될 거예요. 하지만 당장은 당신이 우리 말을 들어줘서 고마울 뿐이랍니다. 그러니 부디, 부디 다음에 빛을 보더라도 지금처럼 대처해주기를 바라요. 약속해줄 수 있죠?"


"약속할게요. 행여 다시 빛이 보인다면 오늘처럼 불을 피울게요. 사샤도 똑같이 할 겁니다." 루시는 마치 내가 자랑스럽다는 듯 댄을 올려다봤고, 댄은 그저 미소지었다. 맙소사, 상황이 존나 이상하잖아. "장하네," 댄이 말했다. 사샤가 있을 때 또 빛이 나타나면 꼭 전화하라는 루시의 말에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부부는 그 말을 뒤로하고 떠났다.  


그들이 떠나고 45분 후, 사샤가 도착했다. 나는 그녀에게 있었던 일을 상세히 들려주었다. 사샤는 무서우면서도 흥미가 돋은 듯했으며, 내가 댄과 루시의 말대로 행동했다는 것에 기뻐했다. 자신이 도착할 때까지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반복해서 듣기를 원했고, 나는 세 번이나 같은 이야기를 들려줘야 했다. "자기 혹시 소총으로 그거 쐈어?" 역시 내 마누라다. "아니, 그런데 거의 쏠 뻔했지..." 


다음 날 알람을 새벽 6시 30분에 맞추고 일어났다. 소총, 삽과 갈퀴를 챙겨서 호수로 출발한 시간이 6시 55분이었다. 분명히 댄과 루시가 설치한 빛을 제거하거나 빛을 움직이게 만든 장비를 철수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으리라고 생각했다. 카메라 화면을 열어 밤새 찍힌 사진을 확인했다. 처음 4장은 스컹크가 나무와 연못 사이를 거니는 것이었고, 다음 4장은 솜꼬리토끼가 연못에서 물을 마시는 사진이었다. 


뭐야, 그럼 빛을 내던 장비는 아직 연못 안에 있겠군. 그렇게 1시간 반 동안, 나는 망할 놈의 연못에 다섯 번이나 들어갔다 나왔다. 수심이 가장 깊은 곳은 150cm 정도였고, 발이 닿는 곳마다 갈퀴로 바닥을 찍어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바닥에 깔린 잔가지만 많았지, 빛을 낼 만한 건 전혀 없었다. 씨발, 이게 뭐야... 


결국 진흙투성이에 온통 젖은 채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진작에 일어난 사샤가 부엌에서 커피를 음미하며 내가 젖은 옷을 벗으려 씨름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사샤는 댄과 루시의 말을 거의 믿는 눈치였고, 이미 지난 일주일 내내 관련된 자료를 찾는 데 혈안이었다. 게다가 내가 연못이나 카메라에서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을 땐 거의  의기양양한 분위기까지 풍겼다. 아내는 내가 그런 태도에 짜증이 나리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실제로 짜증이 무척 났고. 짜증의 대상이나 이유는 불분명했지만 엄청나게 부아가 치밀었다. 너무 혼란스러워서 좌절할 정도였다.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면 무너지는 편이었기에. 그래서 종교도 없고, 도시 괴담이나 공상도 즐기지 않았다. 나는 확실하고, 설명이 가능하고, 예상이 가능한 것만 대응하는 사람이었다. 위협에 익숙했지만, 그 위협의 근원이 무엇인지 아는  편이었다. 지금껏 그런 위협은 언제나 다른 사람이거나 나 자신이었다. 그리고 대상이 사람일 땐 대처하기 훨씬 쉽다. 


사샤가 함께 현관 의자에 앉으며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내가 돌아보자 사샤가 입을 뗐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살다 보면 설명하기 힘든 것도 있..." 


순간 쌓여있던 분노가 터지면서 사샤의 말을 끊고 쏘아붙였다. "뭔데? 그게 뭐냐고, 사샤! 뭔데? 말을 해봐! 이런 거 비스름한 거 하나라도 경험한 적 있으면 빨리 털어보라고! 어떤 이유로도 설명할 수 없는 초현실적인 현상 하나만 대보라고! 씨발, 내가 그 빛을 봤다고. 공기가 바뀌는 것도 느꼈다고. 분위기 자체가 달랐어. 내 머릿속까지 비집고 들어왔다고. 대쉬도 안절부절못하고. 다신이 인터넷으로 본 게 아니라 실제로 아는 거 하나라도 말할 수 있어? 아니 진짜, 하나라도 말해보라고."


"여보, 적당히 해. 그렇게 화낼 것까진 없잖아. 난 그저..." 


"그저 뭐? 웬 미국 원주민이 만든 저주를 넋 놓고 하하호호 보고만 있으라고? 이 상황이 흥미롭고 멋진 경험이라고 말해줄까? 어디, 강령회라도 열고 세이지 태우면서 집 주변에 소금 뿌려서 보호막이라도 칠까? 사샤, 만약 지금 일어나는 일이 진짜라면 2달 안에 웬 벌거숭이 악마가 매주 우리 앞에서 산채로 곰에게 잡아 먹힐 거야. 그건 이해했지? 이해했냐고! 댄과 루시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우리가 그 새끼를 죽여야 한다고, 안 그랬다간 그놈이 '우리를 산채로 찢어버린다'고. 당신은 그게 흥미롭고 불가사의한 상황으로 느껴져?"  


너무 밑도 끝도 없이 사샤를 공격했다는 걸 알았다. 게다가 사샤도 그걸 뻔히 알 터였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차라리 울고 싶었다. 사샤는 말없이 일어나더니 '성질 버리고 사과하기 전까지 말 걸면 죽는다'는 눈빛을 보냈다. 나는 다시 말을 시작했다. 


"미안해, 사샤. 그렇게 말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그냥... 아, 나도 모르겠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어." 


"나도 몰라, 여보... 진짜 말도 안 되는 거 알아. 하지만 정 안 되면 이사해도 돼. 만약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면 다시 팔고 이사하면 되는 거야. 하지만 댄과 루시가 안전하게 지낼 방법을 알려줬잖아. 만약에 그 사람들 말이 100% 사실이라면 여름까지는 버텨보는 게 옳지 않을까? '곰 추격전'이 진짜 일어난 후에 그 사람들이 진실을 말한 것인지 판단해도 늦지 않을 거야." 


대체 사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믿을 수 없었지만 사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 일을 다 겪고도 나는 여전히 이게 일종의 장난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곰 추격전은 거짓으로 꾸밀 수 없는 거겠지? 만약에 벌거숭이 남자가 숲에서 뛰쳐나오더니 곰에게 잡아먹히는 일이  여러 번  일어난다면 그건 인정해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지금 일어나는 일이 진짜라고 믿으리라. 우리는 그날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나는 매일 저녁이 되면 일몰부터 베개에 머리를 댈 때까지 연못을 흘끔거리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2주가 지나자 '첫 빛'으로 생긴 감정적 트라우마가 점차 옅어졌다. 우리는 행복했으며 두말할 것 없이 목장과 집, 정원과 이 환경이 주는 삶을 열렬히 사랑했다. 5월 어느 날 저녁, 내가 저녁 준비를 하는 동안 사샤가 막 도착한 책장을 손님 방에 설치하던 중이었다. 고추를 손질하던 중, 사샤가 놀라는 소리가 들려 괜찮냐고 물어보려던 순간, 사샤의 외침이 들렸다, "여보, 여보! 빛, 빛이야! 연못에 빛이 보여!"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몸에 흐르는 피가 차갑게 식는 게 느껴졌다. 피부가 화끈거리는 동시에 오싹해지며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사샤가 있는 손님 방으로 달려가면서도 들고 있던 칼을 놓치지 않았다. 사샤는 창가에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서 있었다. 그녀의 어깨너머로 보자 저번과 같이 노랗고 작은 빛이 연못 표면에서 약 60cm 아래에 보였다. 사샤는 눈이 동그래져 나를 쳐다보았다. 


다시 연못을 보자 빛의 위치가 살짝 왼쪽으로 바뀌었다. 화가 치밀었다. 저 망할 놈의 빛이 자꾸 나를 화나게 만든다. 분노.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지만 이 병신같은 짓을 확인해 볼 다른 방법이 떠올랐다. 확인해볼 방법. 그때 사샤의 목소리가 내 분노를 뚫고 들렸다. 


"장작 가져올게. 나랑 같이 가서 대쉬 안으로 들이자."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아내는 이미 거실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현관문을 열고 바로 왼쪽으로 꺾어서 장작더미를 챙겼다. 나는 대쉬를 부르며 문 옆에 항상 두는 조명을 찾았다. 내가 대쉬를 찾아 마당을 살피는 동안 사샤는 이미 장작 한 아름을 집안으로 들이고 도끼를 챙긴 후였다. 여러 번 부르다가 겨우 찾은 대쉬는 마당 가장자리에 앉아 지난번과 같은 수목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의 꼬리는 한껏 말렸고 털은 바짝 선 상태였다. 제기랄. 다시 대쉬를 부르자 녀석이 나를 따라서 재빨리 현관으로 달려왔다. 대쉬가 들어온 것을 확인한 후 문을 닫고 30-30구경 소총을 챙긴 후 레버를 열어 탄창을 확인했다. 사샤는 이미 불을 피우는 중이었다. 나는 소총을 의자에 기대어 세워놓고 사샤를 도와주려고 했지만 아내는 내 손을 살짝 치며 말했다, "이건 한 사람이면 충분해, 여보. 내가 할게." 사샤가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신이 난 것 같았다. 사샤 뒤에 앉아서 어쩌다가 이렇게 멋진 여자랑 결혼까지 하게 됐는지 내심 감탄했다. 


부엌에 있던 대쉬가 수목선 방향으로 현관을 향해 짖기 시작했다. 녀석은 빛이 보일 때면 그 방향에 집중했다. 사샤는 대쉬를 돌아보더니 하던 일을 마저 했다. 점점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다. 맞서 싸우고 싶었지만, 분노만큼이나 두려움이 치고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불이 제대로 붙었는지 잠시 확인하던 사샤가 내 옆에 앉았다. 대쉬는 부르자마자 쪼르르 오더니 불가를 서성이며 낑낑댔다. 우리는 잠시 아무 말 없이 불가에 앉아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았다. 그때, 사샤가 입을 먼저 열었다. "나... 나도 느껴져. 뭔가가 있어. 나만 느끼는 거야?" 


"아니... 나도 느껴져." 내 대답에 사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는 두려운 듯했지만 동시에 결연한 표정이었다. 1분이 지났을까, 아내가 아직 빛이 있는지 확인하자고 했다. 우리는 함께 손님 방으로 가서 연못에 뜬 빛이 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처럼 엄청난 안도감이 몰려오며 몸의 긴장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몸이 부르르 떨리기까지 했다. 사샤가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 "맙소사, 자기도 지금 느껴져?"  


"뭐?"  


"이... 느낌. 뭐라고 하지? 갑자기 엄청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장난 아니다!" 아내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이거 꼭 그거랑 비슷해... 온몸이 가려운데 가려운 곳을 동시에 긁어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시원하게 긁은 다음에 따뜻한 수건으로 몸을 덮어준 것 같아!" 그 말에 우리는 함께 웃었다. "그러니까... 아무튼, 그런 느낌이었어." 


자꾸 댄과 루시에게 연락하겠다는 사샤를 말릴 수 없었다. 전에 내게 해준 말과 같은 말만 해줄 거라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역시 집을 찾아온 두 사람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루시는 한동안 사샤와 대화했는데, 빛이 주는 감정과 느낌, 그리고 그와 관련한 그들의 생각을 나누는 것 같았다. 나는 담배 때문에 잠시 밖으로 나갔다. 제대하면서 담배를 끊었는데. 아니, 제대하고 안 취했을 때  끊었지. 하지만 오래된 담배 팩을 발견했을 때, 그것만큼 강렬하게 피우고 싶은 담배도 없었다. 댄이 내게 담배를 건네더니 함께 불을 붙였다. 우리는 말 없이 목장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런 일을 겪어야 한다니 유감이네... 다른 일도 많을 텐데 이런 부담까지 지는 게 참 힘들 거야. 내가 잘못한 건 아니지만... 그냥 유감이네. 쉬운 일은 아니야. 신도 아시지."  


속으로 10초를 꾹 참았다가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네, 이것 참... 불편하네요." 


"그렇지," 댄의 대답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다시 침묵했다. 나는 담배를 끄고 현관 가장자리로 가 쪼그리고 앉아서 비벼 끈 꽁초를 잔디에 버렸다. 댄이 천천히 울타리 기둥으로 가더니 허리춤에 손을 얹고 달을 바라보았다. 그가 코로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그가 계절을 맡는 것을 바라보았다. 댄은 혼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이제 곧 여름이 오네, 해리. 이런 밤이면 금방 알 수 있지... 그리고 꼭 기억하게," 댄이 나를 내려보며 말했다. "봄이 가장 쉬운 계절이라는 것을." 



3편 : https://yul-do.com/humorissue/19762560


출처 : https://blog.naver.com/iamsuekim/221923379772 (번역)

https://www.reddit.com/r/nosleep/comments/f6fheq/my_wife_and_i_bought_a_ranch_in_the_mountains/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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