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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의외...는 아닌 존나 개빡셌던 시험 (조선판 피지컬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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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과거 시험이라고 하면
 
우린 이런 문돌이들이 앉아서 실시간 논문을 쓰는 걸 상상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이런 건 보통 "문과"이고
 
사실상 현대의 행정공무원 뽑는 시험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문과보다 더 어려웠던
 
시험도 존재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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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현대의 직업군인을 뽑는 과거 시험인
 
"무과"이다
 
 
당연히 문과보단 덜 뽑긴 했는데
 
문제는 여긴 진짜 조선판 피지컬 100으로
 
 
문과와 달리 양반가보다 양인, 중인
 
심지어 해방노비도 참가할 정도로
 
 
진짜 인자강들만 참여했던 미친 시험
 
 
 
 
※ 물론 평시 이야기로, 전시나 특수 상황 땐 만 명 이상도 뽑았음
 
 
 
 
 
 
 
 
 
1교시. 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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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과는 크게 3단계로 나뉘는데
 
여기서 초시는 일종의 체력 검정으로 보면 된다
 
 
근데 말이 체력 검정이지

사실상 인간 흉기 선발전인게...
 

 

 

 우선 당연히 활의 나라 조선이기에
 
나무로 만든 화살 3발을 240보 거리에서 발사
 
+
 
철로 만든 화살인 육량전, 아량전, 장전등도 발사하여
 
성적을 매기고

 

  
당연히 여진족 때려잡아야 하니
 
말 타고 활 쏘는 기마궁술(기사)도 보고

 

 

 

((이따위로 화살쏘고 쳐들어오는 놈들 때려잡아야하기에))

 

 

 말을 타며 창을 다루는 기창
 
말을 타며 창을 던지는 투창
 
임란 이후에는 철퇴인 편곤을 시험 보는데
 
임란 이후에는 여기에 조총까지 시험과목에 들어간다
 
 
 
문제는 이 다음에 나오는 가장 극악한 과목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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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조선의 모든 기병이 필수적으로 익혀야하는
 
"마상재" 과목
 
 
당연히 유사 말박이 국가인 조선의 장교들도
 
이 마상기예를 필수적으로 구가해야 했는데
 
 
위의 마상무술을 구가하기 위한 탄력성...?에 필요했기에
 
필수 시험 과목으로 선정되었고
 
 

 

 

 참고로 조선 통신사가 파견되었을 때 일본 애들 앞에서 보여준 거...
 
 
당연히 이 마상기예 8가지
 
심사관들이 보는 앞에서 완벽히 해내야 했고
 
 
여기까지의 과목을 토대로 점수를 합산해
 
1차 합격자를 발표하는데
 
 
대충 여기서 190명이 선발되어
 
다음 시험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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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순신 장군이 처음 치룬
 
무과에서 떨어졌을 때
 
 
가장 큰 감점 요인이 이 마상재
 
자세를 시도하다가 낙마했다고...
 
 
근데 역시 이순신 장군도 인자강인지
 
다친 다리를 버드나무 껍질로 둘러싸고 시험을 강행했다고 한다ㄷㄷ
 
 
 
 
  
 
2교시. 복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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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까지 왔으면
 
당신은 수만명의 인자강을 뚫고 선발된 190인의 인원이 되었다
 
 
그러나 조선은 빡대가리만 가는 고려식 무과와 달리
 
전략, 전술, 유교적 소양도 있어야 가능하다
 
 
즉 2교시 복시는 일종의 행정고시 형태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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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시험장 배치 기준은 문과와 동일 했지만
 
장소는 현대의 국방부 청사인 훈련원에서 봤다
 
 
시험 과목은 '손자, 오자, 육도삼략, 삼십육계' 등
 
병법서 중 1권을 랜덤으로 시험보고
 
 
'대학, 중용, 논어, 맹자' 같은 유교 시험은 필수이고
 
'경국대전' 같은 행정법 시험까지 봐야했다
 
 

 

 

 아 물론 이거 끝나면
 
앞에서 했던 모든 무술을 재평가 받아야 했다...
 
 
자 여기까지 합격하면 당신은 인자강의 육체
 
병법서 + 유교력 + 행정법까지 마스터한
 
 
지덕체를 갖춘 
 
최종 선발자 28인에 들어가게 된다
 
 
 
 
 
 
 
 
 
 
3교시.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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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까지 왔으면
 
당신은 일단 합격자 명단 안에는 들은 것이다
 
 
그러나 어쨋든 1등부터 마지막 등수까지 순위를 정해야 했기에
 
이 최종시험은 국왕 앞에서 치루는 진짜 천하제일무술대회가 되고
 
 
등수에 따라 인사배치하는 시스템이었다
 
현대로 치환하면 인사 배치를 둔 뺑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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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인정전 앞이나 모화관 앞에서 
 
국왕 참관 하에 시행되었고
 
당연히 국왕이 참가하기에 국가 의례로 분류되는 대행사ㄷㄷ


 
이 때의 과목은 개인의 피지컬과 더불어
 
여러명과 협동해야 성적이 나오는 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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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폴로와 매우 비슷한 마상 격구
 
하키와 비슷한 보행 격구
 
2 과목을 시험 봤는데
 
 
설명 못했지만 마상 격구는 위의 초시와 복시에서도
 
시험을 보는 대단히 중요한 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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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국왕이 직접 등수를 매겨서
 
장원은 종 6품, 2,3등은 정 7품을 수여했고
 
 
장원~ 3등까지를 갑과
 
8등까지를 을과 + 정 8품
 
나머지를 병과 + 9품로 분류하여 인사를 배치하는데
 
 
당연히 상위권은 금군 같은 국왕 직속부대
 
중위권은 오위, 오군영 같은 수도권 핵심 부대
 
하위권은 지방, 국경 수비대, 수군 같은 곳으로 배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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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는 배치 안되고 일종의 간부 기초 교육인 권지 생활을 해야한다


당연히 금군, 호위청 같은 국왕 직속 부대
 
사실상 서울 주둔 + 국왕 빽으로 엄청난 진급과 급여가 보장되었고
 
 
중상위권도 오위, 오군영 등으로 수도권 방위 부대
 
지방 핵심 중앙군의 참모로서 요직 진급이 빨랐지만
 
 
중하위권부터는 찐 지방군이나
 
두만강, 압록강에서 여진족과 팬티레슬링 하는 국경수비대
 
사람들이 죄다 기피하던 수군으로 발령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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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합격자 수는 매 시험마다 유동적이긴 했다
 

참고로 이순신 장군은
 
재수 끝에 겨우 합격하긴 하는데
 
 
병과 4등으로 29명 가운데 12등을 기록
 
대충 중위권의 순위였고
 
 
당연히 금군, 오군영 같은 곳은 못가기에
 
함경도 끝자락 삼수의 무관으로 정식 발령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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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그 때 말에서만 안떨어졌어도...
 
 
이순신은 그렇게 최전방 함경도에서
 
3년간 뺑이를 쳐야했다..
 
 
게다가 중앙으로 발령 받았을 때도
 
소신을 지켰기에 충청도, 전라도 지방을 뺑뺑이 돈다
 
 
심지어 거기서도 상관에게 찍혀서
 
북방 최전방인 녹둔도의 전방 소초장으로 가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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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이순신 최초의 전설이 쓰여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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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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