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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오컬트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레딧 괴담



대도시에 가면, 제발 사람 많은 지역에서 머물길 바래.

뉴욕이나 로스 엔젤레스도 대도시지만 한국의 서울만큼 복잡한 곳은 또 없을거야. 지난 6개월간 서울을 3번은 갔는데 아직도 뭐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어.그런데도 바보같이 새벽 2시에 폰도 안 챙기고 밖에 나가 보기로 했지.

회의 일정이 남아 있었지만 잠이 오지 않는 바람에 코트를 집어들고 호텔 방 문을 나섰어. 호텔 안에는 아무것도 할 게 없어. 바는 닫았고, 컴퓨터 룸은 잠겨 있는데다 수영장과 짐은 밤 10시면 영업이 끝나거든. 그래서 어리석게도 호텔 밖으로 나간거지.

내가 걷는 길이 어디인지 파악하려고 애썼지만 20분 정도 걷고나니 알 수 없게 되버렸어. 언제 어디서든 택시를 잡을 수 있으니 택시 타고 호텔로 가면 되겠다 싶었지.

몇분 더 지나니 고층빌딩과 차 소리도 사라지기 시작했어. 내가 바라 마지않던 상황이었지. 작은 편의점이 보였어. 맥주라도 몇 병 사서 근처에 공원이라도 찾아볼 생각이었지.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카운터에 서있던 여직원이 인사를 했어. 아주 낡은 가게였지. 자그마한 키의 여직원은 2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였어. 문제 될 건 없겠지만, 내 눈에는 그처럼 젊은 사람이 이렇게 다 쓰러져가는 가게에서 일을 한다는게 좀 이상해 보였어. 하지만 생각은 떨쳐버리고 소주 2병을 샀지.(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술인데 몇천원 안해)

돈을 내고 가게를 나섰어. 조용한 곳에 있으니 날씨도 더 상쾌하게 느껴졌어. 2월 중순이면 되게 추운게 정상인데 시원하기만 해서 코트도 벗었지. 생애 가장 평온한 시간임에 틀림 없었어. 서울 그 어느 곳보다 사람이 없다는 것도 한 몫 했겠지.

소주를 홀짝이며 걷다 보니, 주위에 건물이 거의 없더라구. 저 멀리 공원이 하나 보였고, 그 외에는 편의점 포함해서 작은 건물 3개밖에 없었어. 나도 모르는 사이 공원을 향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지만, 남은 소주를 마시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장소 같아서 계속 가보기로 했지,

가는 동안 1병을 다 마셔서 빈 병을 주머니에 넣었어. 숨 좀 돌리려고 잠시 멈춰서서 나머지 1병의 뚜껑을 따고 보니, 공원이 어째 더 멀어진 것 같았어. 눈을 문질러 봤지만 공원은 여전히 처음보다 더 멀리에 있었지. 그냥 돌아가서 택시나 잡을까 잠시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어. 공원까지 벌써 반은 온데다 입도 안댄 소주 1병을 포기할수는 없는 것 아니겠어?

이번에는 걸으면서도 공원에만 정신을 집중했어. 소주를 마실때만 잠시 공원에서 눈을 뗐지. 공원에 더 가까이 왔다는 게 확실해졌을 때에야 천천히 진정이 되기 시작했어. 공원까지 50걸음쯤 남았을 때, 뭔가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어. 그리고 넘어지는 그 순간, 귓가에 누군가가 속삭이는듯한 소리가 들려왔어. 한국말 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번역해 볼게. " 이리 와, 들어와. 재밌어. 후회하지 않을거야." 바로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봤지만 있는거라곤 날 넘어지게 한 빈 맥주병 뿐이었어.

맥주병을 집어 근처 풀밭위로 던져 버리려는데, 병이 아주 예전 것 같다는게 눈에 띄었어. "진로" 라는 상표만 겨우 알아볼 수 있었지. 병을 돌리며 다른 글씨는 없나 찾아보다가 마침내 숫자 몇개를 발견했어.

1 9 5 3 1 0 1 1

왜 그 맥주병을 보고서야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어. 속삭임을 들었을 때 바로 도망쳤어야 했는데.아니, 애초에 호텔 방을 나서는게 아니었어. 편의점 쪽으로 달아났지만 발을 뗄떼마다 공원이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 " 도망 가지마. 여기와서 놀자. 들어와. 영원히 머물 수 있어." 목소리를 무시하긴 했지만,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릴때마다 공원으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은 점점 강해졌어.

" 한번만 돌아보면 안 부를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딱 멈춰서더니 고개가 뒤로 돌아갔어. 공원은 어느 새 온데간데 없고, 애들 한 무리가 공터에서 뛰놀고 있었어. 맥주병을 든 남자 한명이 공원 쪽을 향해 걸어가다가, 뒷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더니 맥주병을 땅 위에 던져버렸지.

아이들이 놀이를 멈추곤 호기심이 담긴 얼굴로 남자를 올려다봤어. 남자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첫번째 아이에게 다가가서 칼을 치켜들었지. 하지만 남자가 아이를 찌르기도 전에 다른 아이들이 남자를 둘러싸더니 각자 칼을 꺼내드는거야. 몇몇은 남자의 다리를 찔렀고, 몇몇은 남자를 향해 뛰어올랐어. 나머지 아이들은 남자의 등을 찌르곤 낄낄 웃어댔지. 남자의 피가 공터를 가득 적셨어. 차마 더는 볼수가 없어 몸을 돌리곤 편의점쪽을 향해 계속 뛰어갔어.

공원과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피해 계속 달아났어. 편의점 가까이 가자 소리가 멈췄고, 뒤를 돌아보니 공원이 다시 거기 있었지.

편의점에 도착해 문을 열려 했지만 잠겨 있었어. 뻑뻑해서 안 열리는 것이길 바라며 세게 흔들어봤지만 꿈적도 하지 않았지. 절망감이 온몸을 감싸기 시작 했지만 무시하려 애쓰며 발걸음을 옮긴 그때, 문 안쪽에서 아까 그 여직원이 나타났어. 손잡이를 가리키며 열어 달라고 해봤지만 여자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어. 여자가 얼굴을 움직일때마다 피부 조각이 뚝뚝 떨어져 내렸어. 여자가 말했어. " 공원으로 가. 영원히 머물 수 있어. 영원히 죽지 않을 수 있어. 공원에서 살아. 행복할거야."

나는 고함을 지르며 여자의 얼굴이 비친 문을 주먹으로 내리치곤, 계속해서 뛰었어. 익숙한 건물이 나타나니 마음도 서서히 차분해졌지. 몇분 후에는 걷기 시작했어. 분주한 서울의 거리 풍경이 눈에 들어오자 무릎을 꿇고 살려줘서 감사하다는 기도를 올렸지. 그리곤 소주병을 꺼내 길게 한모금 들이켰어. 다 마신 병을 화단에 던져 버리고 고개를 드니

다시 공원에 와 있었어.

어둠 속에서 나타난 아이들이 천천히 내 쪽으로 걸어왔어. 공포에 질려 주위를 둘러보며 몸을 숨길 곳을 찾다가, 낡은 공중전화 박스를 발견했어.

간신히 몸을 일으켜 전화 박스 안으로 뛰어들어가 전화기를 집어 들었지. 짧게 기도를 읊은 후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댔어. 신호음이 들렸을때의 그 안도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야. 볼 위로 흐르는 눈물을 느끼며 500원을 집어넣고 콜택시 번호를 눌렀어. 경찰에 신고할까 생각도 했지만 내 이야기를 믿어 줄 확률은 0에 가깝다는 걸 알고 있었어. 전화를 받은 직원에게 이비스 호텔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택시를 보내달라고 했어. 직원이 공원의 정확한 위치를 물어봤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공원이 어떻게 생겼는지, 또 공원 근처에 있는 가게가 어떻게 생겼는지 뿐이었어. 잠시 침묵하던 직원은 이내 택시가 출발했다고 대답했어.

전화를 끊고 보니 아이들이 전화 박스 주위를 둘러 싸고 있었지. 그리곤 쾅쾅 두드리기 시작했어. 나는 최대한 몸을 숙인 채 두 발을 들어 문을 지탱했어. 갈색머리를 길게 기른 여자 아이가 내 앞으로 걸어 오더니 미소를 띈 채 날 내려다봤어. 아이의 상체와 다리가 부글 부글 끓어오르면서 얼굴이 길게 늘어나더니 편의점 여자의 얼굴로 변해버렸지. 여자와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 " 문 열어. 영원히 살 수 있어. 문만 열면 안 무서워해도 돼."

아이들 몇몇이 칼을 문틈에 꼽고 비틀어 열려고 했어. 여전히 다리로 문을 지탱하고 있던 탓에 칼날이 발을 파고 들었고, 그때마다 고통이 전신을 휘감았지만 나는 버티고 또 버텼어. 죽고싶지 않았으니까. 발 따위 어떻게 되든 상관 없었어. 그저 살고싶었을뿐. 호텔에 있고 싶었어.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어.

다리에 힘이 풀려가기 시작할때쯤 저 멀리서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들렸어. 오른쪽을 돌아보니 택시가 보였지. 두 발을 딛고 서서 아이들의 공격에 맞설 준비를 했지만, 성급한 경적소리만 들려올 뿐이었어. 눈을 살짝 뜨니 여자와 아이들은 사라지고 없었고 공원은 그 사이에 훨씬 더 낡아 보였지. 박스 문을 열고 미친듯이 택시로 뛰어가 뒷좌석에 올라탔어.

택시 기사가 날 흘깃 보더니 어디로 가냐고 물었지. 이비스 호텔이라고 웅얼거리자 택시가 출발했어. 가는 내내 기사가 이상하다는 듯 날 쳐다보길래 이유를 물었지만 그는 어깨를 으쓱할 뿐 대답이 없었어. 호텔 앞에 도착해 문을 열고 머리를 빼내려던 그때, 기사가 내 어깨를 움켜쥐었어. 그리고 속삭였지. " 몇 주에 한번씩 꼭 거기서 콜이 들어와. 그러니까 위치를 알지. 무슨일이 있어도 그 공원에는 가면 안돼. 거기 아직도 애들 귀신이 나와. 걔들이 마을 사람들을 12명이나 죽였대지. 걔들을 막으려고 했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다 실패했어. 그 귀신들, 계속 공원에 살면서 공원 가까이 오는 멍청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거야. 넌 운이 좋았네. 살았잖아. 계속 그대로만 하면 돼."

난 지금 호텔에 있어. 너희들에게 경고 해주고 싶었어.
만약 한국에 간다면 서울에 머물겠지. 제발, 사람 많은데서만 지내.

이 경고를 끝으로, 난 다시 공원으로 가볼까 해. 그 모든 걸 잊을수가 없거든.
영원히 살고싶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싶어.

안녕.



너무 말이 안되서 2월 새벽에 깡소주 원샷하고는 코트벗고 홍알홍알거리고 있는 외국인을 지나가던 택시기사님이 구해줬다는게 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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