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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엄마가 남긴 빚 5000만원에 파산 낙인 쓴 여덟살 하정이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0/0003359438


여덟 살 하정이(가명)는 아빠 엄마가 없다. 하지만 아이는 갚아야 할 빚이 5000만 원을 넘는다. 빚이 뭔지도 모른 채.

서울 금천구에 사는 하정이는 2019년 자신을 홀로 키우던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장애로 거동조차 불편한 하정이의 외할아버지(69)는 손녀딸을 돌보려 곧장 법정 후견인 자격을 취득했다. 모진 세상, 가여운 손녀. 어떻게든 하정이를 지켜주고 싶었던 할아버지는 그해 겨울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하정이에게 ‘물려받은’ 빚이 있다고 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엄마가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려 썼던 것. 매달 100여만 원씩 이자까지 더해지며 금액은 점점 불어났다.

“세상에 그런 법이 있는지 어찌 알았겠어요. 기초생활수급자에 몸까지 불편한 마당에. 딸 명의로 독촉장이 쏟아져도 그저 내가 책임지면 되겠거니 했지요…. 이제 초등학교 입학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것한테 빚이 웬 말입니까.”

하정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이제 ‘개인파산’뿐이다. 기한 안에 상속을 포기하는 법적인 절차를 밟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파산 신청이 받아들여져 빚을 갚을 책임을 면해도 5년 동안 신용불량이란 꼬리표가 달린다.

한국 사회에서 빚의 대물림에 고통받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대법원이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미성년자 78명이 파산을 신청했다. 올해도 3월까지 빚더미에 깔린 아이 2명이 파산 신청서를 냈다.

법의 허점이 하정이 같은 어린이를 파산으로 내몬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 민법은 ‘미성년자가 빚을 물려받으면 친권자나 후견인이 인지한 시점부터 3개월 안에 상속포기 등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반면 프랑스나 독일은 별다른 절차를 밟지 않더라도 미성년자는 재산보다 큰 빚은 물려받지 않도록 법이 보호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지난해 11월 “법정대리인이 상속포기 및 한정승인 신청을 하지 않으면 미성년에겐 개인파산만 남는다. 신용불량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라는 제안은 해결책이라 할 수 없다”며 법 개정을 촉구했다. 늦게나마 국회에선 10일 미성년자가 상속 재산보다 큰 빚은 물려받지 않게 하는 법률개정안이 발의됐다. 이상훈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장은 “파산을 신청한 미성년자는 전체 빚더미 아동 중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아이에게 빚까지 대물림하는 단순 승계주의를 고수하는 현행법은 개정이 매우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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