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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소설도 이렇게 쓰면 작위적이라고 욕먹는 사례


영화 국제시장의 첫 시작은 6.25 한국전쟁의 피난입니다. 북에서 밀고 내려오는 군인들을 피해서 남한으로 피난을 가던 주인공 가족들은 앞뒤가 완전히 가로막힌 상황에 놓이게 되고 피난민을 태워주던 미군의 배를 타기 위해 흥남부두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이미 앞선 배가 떠나 오도가도 못한 채 두려움에 그들이 떨고 있을 때 미국의 한 화물선이 그들을 위해 자신들의 배를 내어줍니다. 그 배의 이름은 메러디스 빅토리.


문파들에게 이 배는 낯익은 배일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님의 부모님이 이 배를 타고 피난을 오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이 배에는 아주 신기한 일화가 한 가지 있습니다. 오늘 율무가 풀려는 일화는 바로 이 배와 이 배의 선장에 관한 것인데, 얼마나 현실이 픽션 따위는 쌩까버리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가에 대해 함께 느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잘 알려져 있듯, 화물선입니다. 당시 미국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현장으로 긴급히 자신들이 배치했던 군수물자를 회수하기 위해 미국에서 저 배를 출항시켰는데, 당시 선장이던 레너드 라루 선장은 출항 당시만 해도 자신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조차 몰랐다고 합니다. 그저 일단 중간에 급유를 하기 위해 일본에 들르는 일정만이 공개되어 있었고 반드시 일본에서 급유를 한 뒤에만 최종 행선지가 적힌 밀봉된 서류를 열어볼 수 있도록 권한이 주어져 있었죠. 아마 일찌감치 행선지를 안다면 출항을 거부할 수도 있겠다는 미국의 계산이 있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여하간 급유 후 출항을 준비하며 열어본 지에는 다음과 같은 짧은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흥남.


레너드 라루 선장은 한국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젊은 시절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세계 곳곳을 누비던 선장이었지만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는 가볼 일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생전 처음 가보는 나라에 레너드 라루 선장은 현지 사정이 어떤지, 한국인들이 도대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기뢰가 촘촘히 깔린 바다를 간신히 건너 흥남으로 가서 그 곳에 모아둔 미국의 군용 물자들만 수거해가면 되는 것이 그의 임무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일이 벌어진 겁니다.


바로 한국인들이 흥남부두에 모여 배를 태워달라고 애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 한국인들은 그 곳에 있는 미군의 배마다 태워줄 것을 간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렇게나 큰 배들에 자신들의 몸 하나 실릴 수 없다는 것을 납득할 수가 없었지만 이유는 이랬습니다. 


1.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화물선이기에 사람이 있을 공간이 마련되어있지 않다.

2. 다섯 명 남짓하는 선원과 선장의 식료품과 약간의 난방을 위한 연료만이 배 안에 실려있었다.

3. 배에는 어떤 안전을 위한 장치도 없었기에 기뢰로 가득한 바다를 건널 자신이 없었다.


이런 이유를 들어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피난민의 승선을 거부했지만 그들은 추위 속에서, 당시 선원의 말로는 '말 그대로 양 볼이 얼어붙는 것 같은... 배의 연료마저 얼 듯한 추위' 속에서 애원하는 피난민에게서 고개를 돌려버리기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인이 많은 미국인들을 위해 찬송가를 부르기도 했는데 당시 흥남지역은 천주교 교인들이 많아 찬송가를 부르는 것이 특별히 이상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미군들의 마음을 돌려 배를 탄 경우도 많았습니다.


레너드 라루 선장은 결국 선원들을 모아서 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논의했습니다. 하지만 선원들은 위의 이유를 들며 한사코 거절했습니다. 당장 자신들의 안전조차 보장할 수 없는 바다를 무슨 수로 저 많은 사람들을 싣고 갈 것이며, 지금 당장 뒤에서 인민군이 밀고 내려오는데 어느 세월에 저 사람들을 태우냐는 것이었습니다. 레너드 라루 선장은 깊은 고민에 빠졌지만 이내 그들을 태우기로 결정합니다. 모든 군용 물자들을 내렸고 이를 인민군이 활용하지 못하도록 바다에 버렸습니다.


마침내 준비가 끝나고 사다리가 내려왔습니다. 현장에 모여있던 피난민들은 환호와 함께 사다리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고 올라온 순서대로 차례로 화물선의 층층이 쌓인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더 이상 사람이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없으면 문을 닫고 그 윗층에 사람을 실었습니다. 승선이라는 말 보다는 짐을 싣는 수준이나 다름없었다고 봐야 할 지경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빛 하나 없는 어둠 속으로 내려가고, 닫히고, 내려가고, 닫히고를 반복하며 채워나갔습니다.


끝도 없을 것 같던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승선이 마무리될 때 더 이상, 도저히 출항을 미룰 수 없다는 다른 배들의 신호를 받고서야 마지못해 승선을 중단했는데 그 때에 배를 타지 못하고 끌어 올려지는 사다리를 바라보던 이들의 얼굴을, 그 표정을 그는 평생 잊을 수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승선 총 인원 1만 4천 명. 이들의 목숨은 선장이 잡고 있는 키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망망대해, 그 춥고 검은 바다 밑에는 수도 없이 많은 기뢰들이 거미줄처럼 깔려 있었고 화물선인 메러디스 빅토리호에는 그런 것들을 탐지할 수 있는 장치들이 설치되어있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아주 조금이라도 건드리는 순간 그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물 속에 매몰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출발했습니다. 오직 그들의 운명을 하느님께 맡기겠노라는 레너드 라루 선장의 기도와 함께 말입니다.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출항한 배에는 오직 적막 뿐이었습니다. 절망과 슬픔, 고향을 떠난 이들의 설움이 배를 가득 채운 듯 했습니다. 선장실에서 간절히 기도하며 배를 운항하던 레너드 라루 선장에게 선원 한 명이 그 때에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배 위에서 한 여인이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는 기뻐하면서도 걱정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그에게 따뜻한 물이라도 가져다 주라고 하며 의료진의 부재를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배 안에는 경력이 많은 산파가 산모의 출산을 돕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항해 기간 동안 다섯 명의 아이가 탄생했습니다.


배가 부산에 도착한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습니다. 그 많은 기뢰들을 모두 피해 그들은 죽음이 호시탐탐 입을 벌리고 있던 바다를 빠져나와 피난에 성공했고, 선원들은 항구에서 모든 이들을 하선 시킬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지금 배 아래에는 완전한 어둠 속에 놓인 사람들이 몸 한 번 돌릴 틈조차 없이 갇혀 있었습니다. 빛도, 물도, 먹을 것도 없었습니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 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살인, 약탈, 폭동 같은 끔찍한 일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두려움에 떨면서 덮어둔 문을 열었을 때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저 두려움 속에 아주 약간의 희망의 빛을 띈 눈을 한 피난민들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세면서 하선이 시작됐습니다.


총 승선 인원 1만 4천 명. 하선 인원 1만 4천 다섯 명. 단 한 명도 죽거나 다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다섯 명의 축복같은 생명이 그 안에서 탄생해 하선을 하게 됩니다. 레너드 라루 선장은 그때 이 일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배 안에서 어떤 폭동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도 상하지 않고 그 지옥을 견뎌냈고 하선할 때에도 밀치거나 자신이 먼저 이득을 보려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젊은이들은 어린 아이와 노인을 먼저 내릴 수 있도록 배려했고 남자들은 여자들이 먼저 나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들은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짐승이 아니라 모두 품위를 간직한 인간이었습니다. 


하선이 끝난 후, 레너드 라루 선장은 곁에 있던 선원에게 그 날이 성탄절이었음을 전해듣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고 합니다.


“저는 종종 그 항해에 대해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배가 그처럼 많은 사람을 태우고, 단 한 사람도 잃지 않고 끝도 없는 위험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생각해봅니다. 그해 크리스마스, 바다의 거친 파도 속에서 배의 키를 잡으신 분은 하느님이셨습니다.”


이후 레너드 라루 선장은 미국으로 돌아간 뒤 홀연히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전쟁에 지친 젊은 선장의 슬픈 최후였죠.


… 까지는 잘 알려진 이야기이고 이 뒷 이야기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국 베네딕도 수도회 소속 왜관 수도원에 미국의 한 수도원 인수 제안이 옵니다. 왜관 수도원 입장에선 이미 재정이 악화된 수도원인 데에다 거리가 먼 미국의 수도원이니 만큼 인수를 해야 할 이유는 없었기에 그저 예의상 방문만 하고 거절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수도원에 도착했을 때 한국 방문객의 방문을 듣고 그들을 만나고 싶다는 한 노수사가 있음을 전해듣게 됩니다.


노수사는 그들이 한국에서 왔음을, 그들이 북한의 모진 고문을 견뎌가며 신앙을 지켜낸 이들이 세운 왜관 수도원의 일원임을 알게된 뒤 그간 쭉 입을 다문 채로 지켜온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그가 바로 사라졌던 레너드 라루 선장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는 한국에서 경험한 기적과도 같은 항해가 끝난 후 미국으로 돌아와 오랜 시간 아팠다고 합니다. 전쟁이 주는 고통 때문이었을 수도, 그가 경험한 기적에 대한 후폭풍이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결국 자신의 모든 과거를 내려놓고 오직 고요 속에서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수도원에 들어가 수사의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수도원에서도 그가 레너드 라루 선장임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그만큼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고 지냈던 것입니다. 그의 과거를 수도원 사람들이 알게 된 것도 미국 정부가 그에게 훈장을 주기 위해 이곳저곳을 수소문하던 통에 알게된 것이라고 합니다.


레너드 라루 수사를 만나던 자리에는 기묘하게도 흥남철수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있던 가족을 둔 왜관 수도원의 수사도 동석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미국에서 하필이면 이 곳 한국으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왜관 수도원으로 인수 제안이 온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신의 순리이며 그가 정한 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곧 문을 닫을 예정이던 수도원을 인수하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이후 레너드 라루 수사는 돌아가신 뒤 수도사 묘지에 묻히게 됐으며 수도원은 꾸준히 왜관 수도원과 교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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