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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1층 현관까지 80m 따라왔다, 공포의 새벽…법원은 “무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28&aid=0002543278 


늦은 밤 여성을 쫓아 빌라 공동현관문 앞까지 따라갔다가 주거침입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성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공동현관문 앞은 주거공간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현행법의 공백을 메울 스토킹처벌법이 오는 9월 시행을 앞둔 가운데, 이처럼 주거침입이나 성범죄 미수를 적용하기 어려운 ‘쫓아가기’ 행위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5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법 형사9단독 정종건 판사는 최근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된 ㄱ(32)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ㄱ씨는 지난해 9월 새벽, 서울 강남구의 한 골목길에서 귀가 중이던 여성 ㄴ씨을 보고 약 80m를 쫓아가 빌라 1층 공동현관문 앞까지 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곳 공동현관문은 빌라 주차장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검찰은 ‘ㄱ씨가 건물 주차장을 넘어간 것은 ㄴ씨의 주거를 침입한 것’이라며 ㄱ씨에게 주거침입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ㄱ씨가 ㄴ씨의 주거에 침입했다는 것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주거침입죄의 ‘주거’에는 건물이나 주변 땅이 포함되고, 땅의 경우에도 “외부인이 함부로 출입할 수 없다는 점이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나야” 주거침입이 성립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는 ㄴ씨 빌라 공동현관이 있는 1층 주차장에는 외부 차량이 드나들거나 보행자가 넘어오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는 개방된 공간이라는 점이 받아들여졌다. 재판부는 “이 사건 주차장이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된다는 사정이 객관적으로 드러났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남성이 여성의 집까지 쫓아가거나 근처에서 머무르는 행위는 성범죄나 강도 등 다른 범죄의 사전행위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지만, 범죄혐의를 적용하기 어렵거나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해 2월 서울동부지법은 모르는 여성의 집을 알아낸 뒤 집 담장 위에 올라가 내부를 훔쳐본 혐의(주거침입)로 기소된 40대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이 올라선 담장은 이웃건물과의 경계일 뿐, ‘주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2019년 5월 여성의 집까지 쫓아가 문을 두드리고 집에 들어가려 한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은 조아무개(32)씨가 주거침입으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강간미수는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지난해 6월 대법원은 “조씨가 강간을 저지르려 했다는 강한 의심은 든다”면서도 현행법상 의도만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원심의 판단을 받아들여 주거침입만 유죄로 확정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판결이 현행법의 한계라고 지적한다. 현행법상 가해자의 행위를 성폭력 범죄 미수같이 상대적으로 형량이 무거운 범죄에 적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이사를 지낸 김영미 변호사는 “주거침입은 침입이 이뤄져야 성립하는 범죄인데, 단순히 따라갔다고 처벌하는 건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 (성범죄) 의도가 있었는지도 (피고인이) 자백하기 전까지는 확인이 어렵고 행동으로 추인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짚었다.

이 때문에 오는 9월 시행될 스토킹 범죄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에 기대를 거는 목소리가 높다. 상대방 의사에 반해 이유 없이 상대방 또는 그의 동거인, 가족에게 접근하거나 따라다니는 행위, 주거지 등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기 등을 지속해서 한 경우 최대 징역 5년 이하의 처벌을 할 수 있는 법이다. 스토킹 행위에 주로 적용되는 주거침입죄(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나 경범죄처벌법 제3조(범칙금 8만원)에 견주면 처벌이 무겁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과)는 “쫓아가는 행위를 범죄화하고 현행법상 빈틈을 메우기 위해 입법이 된 게 스토킹처벌법”이라며 “이 법이 적용되면 (성범죄) 의도와 무관하게 쫓아가는 행위는 스토킹처벌법으로 처벌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스토킹처벌법은 지속적·반복적 행위를 스토킹 범죄로 규정하고 있어, 한두 차례의 접근 행위를 스토킹으로 처벌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반응도 나온다.

신민정 기자 shin@
hani.co.kr


판사들스토킹해야겠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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