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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펌글]천주교 흑역사 레전드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51247386


이재수의 난


때는 18세기 말 ~ 19세기 초 사이

 

당시 대한제국은 조불 수호 통상 조약을 맺게 되는데 당연하지만 이 조약을 통해 조선을 식민지로 삼으려고 했음

 

암튼 수교를 하고 자연스레 프랑스 가톨릭 선교사들도 선교를 목적으로 이곳으로 오게 됨

 

통상 조약에 따라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게 된 조선에서 프랑스 선교사들은 마음껏 선교를 하고

 

그동안 박해받던 조선인 천주교인들은 드디어 양지로 나와 자유로이 천주교를 전파함

 

문제는 천주교인들이 프랑스 선교사들을 등에 업고 패악질을 저지름

 

조약에 따라 프랑스 선교사들은 조선의 법으로 처벌할 수 없고 프랑스의 법으로 보호받았으며 성당은 치외법권으로 인정됨

 

이를 이용한 조선인 천주교도들이 상점에 들어가 물건을 그냥 들고가버리거나 협박하며 물건을 강탈함 하는데 이런건 애교였음

 

프랑스 선교사가 있는 성당 내에 아예 형틀을 만들어 천주교인들 눈 밖에 난 사람들을 잡아가 

 

형벌을 내리는 극악무도한 짓들을 벌이기 시작함

 

문제는 이들을 처벌해야 하지만 잡으려고 하면 치외법권 지역인 성당으로 도망가 숨어버리고

 

무슨 악행을 저지르던 프랑스 선교사들은 천주교인이라는 이유로 죄인들을 숨겨주고 비호해줌

 

오히려 밖에서 천주교인들이 무엇을 하건 방관하고 묵인하면서 행태에 동조하기도 함


그러던 1901년 2월 제주도에서 크게 사건이 터지는데

 

패악질을 일삼던 천주교인 오달현과 오창우가 마을 훈장이던 헌유순과 그의 아버지 헌규석, 

 

장의 ( 향교에서 가장 높으신 분) 오신락을 잡아가 성당에서 고문하였고 모진 고문 끝에 장의 오신락이 사망함

 

당시 제주도에선 과세가 심했는데 세금 징수를 천주교에서 맡아서 했는데 진짜 악독하게 돈을 뜯어냈음

 

불만이 점점 쌓여가던 제주도 사람들은 모여 천주교들의 문제점과 불만 사항을 모아 제주 목사에게 청원하며

 

매우 온건적이게 대화로 풀어나가려고 했으나 별 소득이 없었고 그렇게 불만은 더 크게 쌓이고 있었음


 그러다 5월 14일날

 

천주교 선교사와 교인들의 행패를 저지하는 모임인 상무사의 지도자이며 온전파였던 오대현을 천주교인들이 납치하는 사태가 터짐

 

분노가 폭발한 사람들은 상무사는 이재수라는 사람을 새 지도자로 선출한 뒤 

 

일본인에게서 무기를 사 제주도를 돌며 성당들을 불태웠음

 

이에 놀란 선교사들과 천주교인들이 제주성으로 도망쳤지만 그동안의 패악질이 너무 심해 민심을 잃었던터라

 

관리들은 같이 무기를 들고 합류했으며 제주성 대한제국 병사들이 그들을 지켜주지 않고 성문을 열어줬음


 이로 인해 제주 내 프랑스 선교사들과 천주교인 약 300명이 학살당했고

 

 워낙 제주 사람들이 이들을 증오했던지라 장례는 커녕 땅에 묻히지도 못하고 그냥 썩어버리라고 밖에 던져버렸음

 

결국 이 사태로 프랑스는 대한제국에 경고를 날리며 군함 2척을 제주도로 파병하였고

 

 일본은 자기 밥상 뺏길 것 같다는 생각에 군대를 파견해 자기 밥상을 지키려고 했음

 

상황이 동학농민운동과 비슷하게 흘러가자 제주도민들의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

 

이재수는 제주 내 저항군들을 해산시켰고 천주교와 대한제국 정부와 교섭을 함

 

 다시는 천주교인들이 악행을 저지르지 못하게 시정할 것을 약속 받고 이재수와 

 

상무사 초대 지도자인 오대현 그리고 그 뜻을 함께 했고 같이 끝까지 가자고 했던 강우백 셋이 자수하는 것으로 사건은 종료됨


이 셋은 한국 역사상 최초로 서양식 재판을 받았고 교수형 최종 판결을 받은 뒤 처형되었고

 

대한제국은 프랑스에게 배상금 5160원을 냈음

 

동학 때와 달리 빠른 자진 해산과 지도자의 자수로 결국 프랑스는 식민 개입할 여지가 없어서 프랑스는 입맛을 다시며 떠났고

 

일본만 빠르고 깔끔하게 끝난 덕에 지 밥그릇 지켰다고 좋아라 했음

 

참고로 세명을 기리는 비석과 이 사건을 기념하는 비석이 제주도에 세워졌는데

 

비문의 내용은 

 

" 여기 세우는 이 비는 종교가 무릇 본연의 역활을 저버리고 권세를 등에 입었을 때 

 

그 폐단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교훈적 표식이 될 것이다. " 라고 써져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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