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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코로나도 브렉시트도 안보인다... 英 모든 이슈 빨아들인 필립공 사망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69/0000596393


모국 그리스에서 추방당한 험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여왕과의 러브스토리, 왕실 일원이 된 이후 행보, 젊은 시절 패션까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남편 필립공이 99세의 나이로 영면에 든 뒤 현지 매체들은 연일 고인을 추모하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지난 74년간 ‘여왕의 남자’로 살다 간 그의 위상을 감안하면 일견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산적한 현안마저 외면한 채 영국의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11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9일 필립공 사망 후 영국 언론의 보도 행태를 집중 조명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신문과 방송, 온라인 가릴 것 없이 모든 영국 매체가 필립공 관련 기사로 도배돼 있다는 것이다. WP는 “(기사는) 사후 헌사의 중심 무대”라며 “군인이자 세계 여행자, 여왕의 남편, 중절모를 벗고 있는 영국 신사 등 다양한 측면에서 필립공이 소비되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민과 현대사를 함께 하며 외조의 모범으로 불렸던 그의 생애를 떠올리면 끊임없는 조명은 당연한 수순이다. 버킹엄궁에 따르면 그는 생전 약 5,000회의 연설과 약 3만2,000번의 단독 업무를 수행했다. 또 스포츠, 환경, 자연보호 등 수백 개 분야를 후원했고, 고령운전 사고, 여성ㆍ인종비하 발언 등으로 설화를 일으킨 적도 있다. 그러나 왕실 인사를 기리고 예우하는 차원을 넘어 패션 스타일과 식이요법, 유명 연예인들과의 인연 등 자극적이고 흥미 위주 기사가 범람하면서 언론의 과도한 상업성을 지적하는 비판이 적지 않다.


요즘 영국의 형편이 좋은 것도 아니다. 코로나19 여파로 경제는 여전히 침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데다, 1월 발효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진과 북아일랜드 폭력시위도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어수선한 상황에서 언론이 모든 관심을 ‘필립공 사망’ 하나로 유도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11일은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4차 대유행 조짐이 완연한 가운데 영국만 봉쇄조치 완화에 들어간 뜻깊은 날이다. 그러나 의미 있는 방역 성과는 필립공 별세 이슈에 완전히 묻혔다. 신문은 “고인의 삶과 유산이 영국 언론보도를 지배했다”며 “다른 긴급한 상황들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까닭”이라고 진단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일찌감치 뭇매를 맞았다. 필립공 별세 직후 황금시간대 정규 프로그램을 모두 취소하고 추모 방송을 대거 편성한 탓이다. “공영방송으로서 슬픈 소식을 적절하게 스케줄에 반영했다”는 해명에도 시청자들은 ‘채널 선택 권리’를 침해했다고 BBC를 거세게 성토했다. 오죽하면 방송사가 추모 프로그램 관련 항의를 접수하는 별도의 민원 페이지를 만들어야 했을 정도다. 영국 민영방송 ITV 역시 편성표를 대거 바꿔 내내 별세 소식만 전했다가 반발에 직면했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두 방송사가 편성표를 필립공 관련 특별 프로그램으로 대체한 뒤 시청률이 전주 대비 60% 넘게 줄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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