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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네이트판] 취집한 여자의 삶

음슴체 가겠음. 5살 외동 아들 하나 키우는 여자임. 진부한 말이지만 여자도 경제력이 있어야 함. 부끄럽지만 나는 속된 말로 취집을 했음.

전문대 항공과를 졸업하자마자 10살 연상의 명문대 출신 전문직 남자친구와 결혼함. 남자친구는 강남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고 나는 서울 변두리 낡은 아파트 한 채 깔고 앉은 서민 집안이었기 때문에 당시 시댁의 반대는 극심했음. 남자친구는 다 좋았지만 키는 조금 작은 편이었고 나는 외모 하나는 예쁜 편이었고 키가 컸음. 아마 키 덕분에 겨우겨우 허락을 받은 것 같음.

시집살이는 지금도 은은히 진행중이지만 명절에만 시댁에 가기 때문에 그건 괜찮음.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했고 나도 얄팍한 우월감을 느꼈음. 시댁에서 해주신 30억짜리 신혼집과 화려한 특급 호텔 결혼식.

그렇지만 애낳고 살아보니 그게 전부가 아님. 우선 경제권을 남편이 전부 가지고 있음. 집,차는 물론 남편 명의고 세후 월천 조금 넘게 버는데 돈관리 남편이 하고 생활비도 따로 안 줌. 각종 세금,공과금,폰비,보험비,아이 교육비,경조사비,차량유지비등도 전부 남편 카드에서 자동이체됨. 아이 장난감이나 옷, 자잘한 준비물까지도 남편이 사 줌. 마켓컬리랑 배민 남편 카드 연결되어 있고 생필품이나 식비지출은 거기서 해결함. 내게는 남편에게 문자가는 백만원 들어있는 비상용 체크카드 하나가 끝. 말 그대로 비상용이라 사실상 병원비로만 사용하고 남편이 사용처랑 잔액 항상 확인해서 백만원 다시 채워줌. 내 개인 용돈은 매달 5만원이 끝.

그뿐만이 아님. 남편은 벤츠타지만 나는 지하철 정기권 끊어줌. 남편은 스벅커피 마시지만 나는 네스프레소 캡슐커피 마심. 남편은 호텔 피트니스에서 운동하지만 나는 아파트 커뮤니티 내 헬스장에서 운동함. 남편과 아이는 명품을 입지만 나는 보세를 입음. 연애할 때 선물받은 명품지갑이랑 결혼할때 받은 예물가방 하나가 가진 명품의 전부. 아들 유치원 행사 때만 아들 기 살려줘야 한다며 백화점에 데려가서 명품옷,신발 사줬고 평소에는 못 입게 함.

남편은 분명 좋은 아빠임. 아이가 먹고싶다는 음식, 갖고 싶다는 책이며 장난감 다 사주고 애 먹는거에 아끼지 말라며 내게 유기농과 특a급 한우를 강조함. 퇴근하고 와서 아이랑 놀아주고, 공원산책도 가고, 공부도 봐주고, 욕조에 오리장난감 띄워놓고 거품목욕 시키며 깨끗하게 씻겨주고, 동화책 읽어주고 굿나잇 키스해서 재우는 아빠임. 토요일에 일 끝나면 애랑 둘이서 키즈카페며 영화관이며 외식,캠핑, 테마파크 갔다오는 아빠임. 사랑을 듬뿍 주면서 적절한 훈육도 할 줄 아는 이상적인 부모상임. 영유-사립초-국제중-자사고-인서울 의대를 보내겠다는 마스터플랜도 있음. 아이 중학교때는 대치동으로 이사가고 아이 결혼할때 강남에 아파트 한 채 사주겠다고 재테크에 힘쓰고 있기도 함.

나한테도 좋은 남편인지는 모르겠음. 배부른 소리라 할수도 있겠지만 가끔 현타가 옴. 어버이날에는 무조건 시댁에 가고, 시부모님께는 용돈과 선물을 드리지만 우리 부모님께는 아무것도 없을때. 매일 새 밥과 새 국, 반찬 3개와 메인요리(육류나 생선류)가 있어야만 밥을 먹으면서 가끔 반찬투정할때. 아이 성적이 기대에 못미치면 "당신을 닮아서 그런가봐." 웃으며 농담할때. 같은 전문직 맞벌이 부부가 부럽다고 할때. 이번달 내내 외출한 곳이라고는 단지내 놀이터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때. 나를 은연중에 무시할때.

말이 길었지만, 여자도 경제력이 꼭 있어야 하고 취집이 다가 아님. 결혼은 순간이지만 결혼생활은 훨씬 김. 나도 나름 행복함. 주변에서 시집 잘 갔다고 해주고, 솔직히 시집 잘 간건 맞음. 아들도 사랑스러움. 하지만 학교다닐때 공부 열심히 하고 내 커리어를 키웠으면 어땠을까 아쉬움.

https://m.pann.nate.com/talk/366383599?currMenu=category&page=3&ord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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