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아노라>의 아카데미 5관왕에 대한 외신 분석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5관왕을 차지한 <아노라>의 놀라운 수상 결과에 대한 The Hollywood Reporter 수석 어워즈 편집장 '스콧 파인버그'의 평론입니다.
아래 내용이 다소 길어서 요약을 드리자면 <아노라> 수상의 결정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하네요.
1. 아카데미 회원들의 다양성(인종, 국적, 연령대) 증가로 인한 개성 강한 예술 영화 선호도 상승
2. 배급사 Neon의 똑똑한 캠페인과 영화의 입소문
3. 가장 강력한 경쟁작 중 하나인 에밀리아 페레즈의 자멸
4. 2월초 개최된 주요 시상식 작품상 수상으로 아카데미 본 투표에 앞서 대세로 부상
+ 션 베이커 감독은 본인이 수상할 지 알았던 것 같다.
++ 데미 무어가 젊은 마이키 매디슨에게 밀린 서사가 <서브스턴스>를 연상케 해서 씁쓸하다
아노라(Anora)의 여정은 5월 칸 영화제에서 시작되었다. 메인 경쟁 부문의 심사위원장을 맡은 그레타 거윅(Greta Gerwig)은 이 드라마와 코미디가 결합된 작품에 영화제 최고의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여했다. 황금종려상이 오스카 수상의 보증 수표가 되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 지금까지 단 두 편의 영화(1955년의 <마티>와 2019년 네온(Neon) 배급의 <기생충>)만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후 9개월 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했다.
<아노라>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이 출연하는 이 영화가 업계의 진지한 관심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션 베이커는 시네필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존경받아온 감독임에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목 받은 건 <플로리다 프로젝트>(The Florida Project)의 윌렘 데포(Willem Dafoe)가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것이 전부였다.
배급사 네온(Neon)은 <기생충>의 오스카 캠페인 전략을 거의 그대로 재현했다. 이미 칸에서 개봉을 했음에도, 가을 영화제 시즌(텔루라이드, 토론토, 뉴욕 영화제)에서 영화를 다시 선보였고, 감독이 직접 나서 배우들을 업계에 소개했다. 이후에는 다수의 시사회, Q&A 세션, 리셉션 등을 진행했으며 10월 중순 북미 극장에서 개봉했다. (<기생충>은 10월 11일 단 한 개 극장에서 개봉했고, <아노라>는 10월 18일 여섯 개 극장에서 개봉을 시작했다.)
이후에는 강력한 입소문과 뛰어난 평가 (로튼토마토에서 93% 신선도 유지)를 바탕으로 흥행을 이어갔다. 현재까지 <아노라>의 전 세계 수익은 약 4,100만 달러로, 제작비의 7배에 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올해 아카데미 후보는 1월 23일 발표되었다. <아노라>는 총 6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는데, 이는 넷플릭스의 <에밀리아 페레즈>(13개 부문), A24의 <브루탈리스트>(The Brutalist)와 유니버설의 <위키드>(Wicked)(각 10개 부문), 그리고 서치라이트의 <어 컴플리트 언노운>(A Complete Unknown)과 포커스 픽쳐스의 <콩클라베>(각 8개 부문)보다 적은 숫자였다.
당초 작품상 경쟁은 이들 6편의 영화 간의 대결로 보였으며, 특히 <에밀리아 페레즈>가 약간의 우위를 점하는 듯했다. 누구도 <아노라>가 수상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과 일주일 뒤, <에밀리아 페레즈>의 주연 배우가 과거 인종 차별성 트윗을 올렸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캠페인은 산산조각이 났고, 그녀가 이후 진행한 인터뷰와 해명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러던 중, 대략 3주 전 주말(2월 7~9일, 아카데미 시상식 본 투표는 2/11~18일) <아노라>는 결정적인 선두를 차지했다. 2월 7일, 비평가 협회상(Critics Choice Awards)에서 작품상을 수상했고(이 투표는 에밀리아 페레즈 논란이 발생하기 전에 마감), 2월 9일에는 제작자 조합상(Producers Guild Awards)과 감독 조합상(Directors Guild Awards)에서 모두 작품상을 받았다. <아노라> 지지자들은 2월 16일 영국 아카데미상(BAFTA) 작품상을 <콩클라베>(Conclave)가 차지하고, 2월 23일 배우 조합상(SAG)에서 최고의 앙상블상 역시 <콩클라베>가 가져가면서 잠시 긴장했지만, 그때쯤 이미 승부는 기울어 있었다.
흥미롭게도, 겸손하고 차분한 성격의 감독 션 베이커(Sean Baker)는 우리보다 먼저 승리를 예감했던 듯하다. 지난해 10월 초, 내가 그와 Q&A를 진행하기 전, 영화제에서 주목받고 있던 다른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베이커 감독이 "브루탈리스트가 우리의 가장 큰 경쟁 상대인 것 같군요”라고 무심코 언급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브루탈리스트> 말고도 <아노라>보다 수상 가능성이 높은 영화들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은 속으로만 간직했다.
나를 포함한 영화 평론가들은 오스카가 #OscarsSoWhite(2015~2016년) 운동 이후 얼마나 아카데미 시상식이 크게 변화했는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최근 몇 년간 평론가들의 초점은 주로 인종과 성별(아카데미의 유색 인종 및 여성 회원 수가 두 배 증가)에 맞춰져 있었지만, 사실 지리적 다양성과 연령층 변화가 투표 방식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 외 지역의 회원 수가 급증하면서 비영어권 영화에 대한 개방성이 커졌고, 이와 동시에 미국 스튜디오 시스템 밖에서 활동하는 젊은 회원들이 유입되면서 전통적인 ‘오스카 영화’의 정의가 변화했다.
(->> 이 부분은 다른 기사 내용을 참고했을 때, 저연령층 회원의 증가로 <아노라> 같이 선정적이면서 욕설을 많이 사용하는 고상하지 않은 영화가 수상할 수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 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OscarsSoWhite 이후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들을 보면, <문라이트>(Moonlight), <셰이프 오브 워터>(The Shape of Water), <기생충>,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그리고 <아노라>까지, 모두 기존 오스카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개성 강한 예술 영화들이다. 이들 영화의 또 다른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감독들이 ‘영화 감독들의 감독’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베이커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아이폰으로 장편 영화(<탠저린>(Tangerine))를 촬영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영화라는 예술 자체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숨기지 않는 인물이었다.
<아노라>의 인기에는 주연 배우 매디슨의 돌풍이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녀는 치열한 여우주연상 경쟁에서 예상치 못한 승리를 거두었다. 25세의 그녀는 BAFTA와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 한편 62세의 데미 무어(Demi Moore, *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가 골든 글로브, 크리틱스 초이스, SAG에서 승리하며 오스카 수상의 유력 후보로 꼽혔다.
나는 2월 17일 마이키 매디슨이 여우주연상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 기사를 썼고, 그 생각을 그대로 유지했어야 했는데 이후에 다시 기사를 내어 데미 무어가 받을 것이라고 예측을 바꿨다. 하긴 생각해보면 아카데미 회원들이 영화 <아노라>를 그렇게나 사랑한다면 당연히 <아노라>의 주인공인 그녀도 사랑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카데미 회원들이 오래된 베테랑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할 것이라 판단해 데미 무어에게 표가 갈 것이라 예측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매디슨의 승리가 반갑기도 하지만, 데미 무어가 그녀가 연기한 <서브스턴스> 속 캐릭터가 경험한 것과 매우 흡사하게도, 젊은 배우에게 자리를 내주는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는 점은 씁쓸한 일이다. 영화계는 참으로 냉혹한 곳이다.
출처 : https://muko.kr/movietalk/15326760?rid=715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