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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19세기 조선 학자의 딸/선비의 아내로 산다는 것

이 글은 화서 이항로(李恒老:1792∼1868)가 그의 둘째 딸인 벽진 이씨에게 쓴 네 편의 편지를 통하여 드러나는 벽진 이씨의 삶의 모습들을 살펴서 구체적으로 기술하고자 한 것이다. 이 글들은 아버지가 살아있는 딸에게 보낸 편지라는 점에서, 특히 그 아버지가 19세기의 조선 성리학 향방을 이끈 대표적인 학자라는 점에서 여타 남성 사대부들이 지어 온 비지 문자 중심의 여성 대상 글과 변별되는 여성의 형상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며, 또한 19세기 남성 사대부의 대표 격인 화서의 목소리로 그려지는 딸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그 시기를 대표할 수 있는 남성 사대부의 눈에 비친 여성의 모습과 그 사이에 드러나는 여성의 실제 삶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데 효과적인 자료라고 생각한다.

편지글에서 드러난 벽진 이씨의 모습은 시대를 대표했던 유학자의 딸로서 글에 관심을 가지고 선인들의 글도 볼 수 있는 능력과 글을 쓰는 데 매진하고 싶은 의지 또한 지녔으나, 시부모님을 잘 모시고 글을 읽고 궁리하는 선비인 남편을 뒷받침하기 위해 글이 금기되고 이전에 어진 여성들이 걸었던 길인 ‘길쌈’만을 해야 할 일로서 강력하게 권장 받았다. 어떻게 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한 좌절을 겪었다고 할 수 있는 그녀의 최종 목표는 ‘가난을 딛고 내일의 희망인 아이들을 도리에 알맞게 키우는 것’으로 확정되었던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목표에 대한 권고가 일방적이고도 건조한 공표가 아니라 딸의 고민과 삶의 무게를 헤아릴 줄 아는, ‘지기(知己)’로서의 아버지를 둔 딸로서의 모습도 드러난다.

이 글들은 사대부 남성의 목소리로 발화되는 여성에 대한 글이기 때문에 딸인 벽진 이씨의 모습만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인 화서의 목소리도 함께 드러나고 있다. 글 속에서 화서가 딸에게 겉으로 본받을 것으로 공표하는 모습은 다름 아닌 ‘어진 여성’의 길이지만, 한편으로는 부모의 입장으로서 자식이 편하게 살아가기를 기원하고, 딸이 바라는 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려는 속내도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여성의 형상에 대하여 가지게 되는 남성 사대부의 욕망과 글의 객체가 되는 여성이 바라고 원하는 양상이 충돌하는 지점을 보여주기에, 19세기 조선에서도 여전히 이러한 ‘남성이 바라는 여성’과 ‘여성이 원하는 여성’의 모습 간 괴리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561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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