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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시스여성의 자리를 빼앗는 트랜스여성’ 이라는 프레임

국제수영연명(FINA)가 트랜스여성 선수의 여성부 출전에 대해서 12세 이전에 성별적합수술을 한 사람에게만 출전 자격을 부여하는 정책을 만들었다. 그런데 12세 이전이라는 기준은 세계 트랜스젠더 건강전문가협회에서 권장하는 15-17세 보다 훨씬 빠른 나이로 ‘트랜스여성 선수의 여성부 출전을 사실상 금지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여성부 경기에 출전하는 것은 시스젠더 여성들의 몫을 빼앗는 것 아니냐?’와 같은 트랜스여성들의 여성부 출전을 둘러싼 대표적인 질문들이 있다. 이런 질문들을 잘 들어보면 성별이분법을 당연하다고 전재하고 있고 스포츠의 목적을 오로지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기존의 질문들이 나온 배경과 문맥을 알아보고 더 나아가 새로운 세상을 향한 새로운 질문들을 만들어야 한다.


가장 흔한 주장으로는 트랜스여성 선수가 여성부 경기에 출전하게 되면 시스여성이 손해를 본다는 주장이 있다. 트랜스여성들(심지어 남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이 시스여성들의 금매달을 뺏는다는 주장이다. 어떤 이들은 트랜스여성의 여성부 출전을 가능하게 하면 여성부 경기에서 뛰는 것이 남성부 경기를 뛰는 것보다 금메달을 따기 더 쉽게 때문에 ‘성전환 수술’을 해서 여성부로 나가서 금메달을 따려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는 금메달에 대한 지극히 ‘한국적인 인식’과 트랜스젠더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불러일으킨 과도한 상상력에 기반한 주장이다. “금메달” 자체가 운동을 하는 목표이자 인생의 목표가 되도록 만드는 한국의 스포츠 현실에서 나올 수 있는 상상력이다. 어려서부터 딱 한 종목을 정해서 전 세계 1등을 꿈꾸며 달리게 하는 것을 ‘스포츠’라고 여기는 나라는 많지 않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취미로 그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올림픽에 출전하기도 하고 그런다.


반면 한국은 “국위 선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됐던 ‘엘리트 체육’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금메달에 대한 한국적인 인식으로 인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금메달을 따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트랜스젠더가 되는 것도 금메달을 따기 위한 한 가지 전략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상상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스포츠와 인권’의 관점에서도 ‘여성과 인권/여성과 운동’의 관점에서도 올림픽 메달이 아니라 생활체육의 중요성을 훨씬 더 많이 강조해야 한다. “쇼트트랙 강국”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국가보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돈에 부담없이 스케이트장을 다닐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양궁 강국”이라는 타이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돈에 부담없이 양궁이든 국궁이든 시도해 볼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하다. 스포츠는 인권이다. 모두가 스포츠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몇 개 따는 나라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 지금 잠시 생각해 보라. 올림픽 기간 동안 뉴스에 “대한민국 금메달 00개, 전체 순위 00위”라고 뜬다고 해서 나한테 좋은 게 뭐가 있을까? 놀랍게도 아무것도 없다! 스포츠와 관련해서 한 사회를 평가한다면, 올림픽 금메달 획득 순위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운동을 즐겁게 그리고 충분히 즐기고 있는가’가 그 사회를 평가하는 기준이 돼야 한다. 그 기준으로 평가해 본다면 한국은 어떤 사회일까? 정말 형편없는 사회다.


청소년들은 공부하느라 스포츠를 즐기지 못하고 있다(청소년 공부시간 OECD 국가들 중 최상위권). 노동자들은 노동시간이 너무 길어서 스포츠를 즐기지 못하고 있다(노동자 노동시간 OECD 국가들 중 최상위권). 여성들은 운동을 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져서 스포츠에 대한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져 있다.


어떤 계기로 인해서 이런 상황이 바뀌어서 청소년들도 노동자들도 여성들도 자유롭게 원하는 만큼 스포츠를 즐기는 사회가 됐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 사회가 되면 사람들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청소년들의 공부시간이 줄었다는 뜻이고 노동자들의 노동시간도 줄었다는 뜻이다. 성역할 고정관념도 줄었다는 뜻이다. 개개인들의 삶과 우리 사회구조와 문화는 획기적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트랜스젠더, 간성(인터섹스)은 기존의 성별이분법 체계에 맞지 않다고 해서 스포츠를 하지 못해도 되는 것인가? 트랜스젠더와 간성이 함께 즐겁게 평등하게 안전하게 스포츠를 즐기게 된다고 해서 시스여성 혹은 다른 누군가가 스포츠를 즐길 기회가 박탈될까? 그렇지 않다. 트랜스젠더가 마음놓고 운동할 수 있는 세상에서는 시스여성들도 마음놓고 운동을 즐길 수 있께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나의 몸을 어떻게 볼지 염려하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우승이나 금메달의 문제가 아니라 참여하는 것, 함께 뛰는 것, 같이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스포츠는 그런 과정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한다. 스포츠는 내 자신과 내 몸의 연결성을 높인다. 사람들이 나의 몸을 평가하는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되면 나 자신과 내 몸의 연결이 끊어진다. 스스로를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획일적인 기준에서 벗어나 내가 내 몸과 화해하고 친해지고 연결되는 과정이 일어난다.


정신과 육체가 하나되고 자존감이 높아진다. 다른 사람과 협력하고 연대하는 방법을 배운다. 규칙을 배우고 따르는 연습도 하게 된다. 공평과 평등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이런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트랜스젠더와 간성 뿐만 아니라 시스젠더 여성들도 이런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성별이분법은 성역할고정관념은 결국 시스젠더 남성들만의 사회를 구축하는데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여성부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을 XX 성염색체로 할 것인가, 외부 성기 모양으로 할 것인가, 테스토스테론 수치로 할 것인가, 성별적합수술을 한 나이를 기준으로 할 것인가 많은 이야기가 있다. 나는 질문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별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이 괜찮나? 이분법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것은 괜찮은가?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를 가두고 있는 기존의 틀을 깨는 새로운 질문들을 만들어야 한다.




1. 스포츠는 이기기 위해서 하는 거 맞음

2. 올림픽 메달은 모든 참여 선수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밥그릇 경쟁이 맞음

3. 올림픽은 신체 조건의 공정성을 중시하므로 mtf가 시스젠더 여성보다 신체적으로 더 강하지 않다는 증거를 제시해야 함 근데 ioc는 2021년 거세도 안 하고 여성 호르몬도 맞지 않는 mtf의 참여 가능 조항을 넣음으로서 입증 의무를 아예 없애버림 게다가 원래 19살짜리 원주민 소녀가 출전했어야 할 자리를 43세 백인 부자 부모 둔 mtf가 가져가버린 허버드의 예가 있는데 당연히 밥그릇 소리가 나오지 안 나오겠음?

트젠과 앨라이들은 피해망상과 인권과 터프 빼면 아무 단어도 쓸 수 없는 세상에서 태어났나? 말은 긴데 항상 논리가 없고 다 똑같은 말만 하고 결론은 감성팔이임 님들보다는 차라리 클레멘타인이 감성팔이 더 잘할 것 같네요 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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