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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프메 인기몰이 이동욱부터 청담부부 정우성·이정재까지…‘아저씨 열풍’의 이면

그냥 ‘아재 열풍’이라 착각마라…# 무해함 # 헛물안켬 # 사리분별

최근 젊은 여성들이 40대 이상의 남자 배우를 좋아하는 현상, 이른바 ‘아저씨 열풍’을 이끌고 있는 배우 정우성·이정재. 청춘스타의 대명사였던 두 사람은 영화 <헌트> 개봉 후 각별한 우정이 새삼스레 재조명되면서 ‘청담 부부’라는 애칭으로도 사랑받고 있다.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NC소프트가 운영하는 플랫폼 ‘유니버스’는 구독료를 내면 해당 연예인과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프라이빗 메시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프메’는 일종의 단톡방인데, 가입한 사람들의 메시지가 모두 보이는 연예인과 달리 구독자에게는 다른 사람이 보낸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다. 즉 연예인이 보낸 메시지만 보이니, 나와 연예인의 ‘1 대 1 대화’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친밀성이 서비스의 포인트이다.


같은 기능의 다른 플랫폼으로는 ‘버블’이 있다. 최근 배우 이동욱의 프메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가입자가 18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애플리케이션(앱)의 특성상, 서비스 이용자는 대부분 10~30대의 젊은 여성들이다. 이 때문인지, 팬들이 설정해둔 호칭에는 ‘딸’이나 ‘조카’도 있다(팬들이 불리고 싶은 호칭을 설정해두면, 상대 배우가 메시지를 발송할 때 적용된다).


이동욱의 프메는 ‘아저씨의 매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최근 젊은 여성들이 40대 이상의 남자 배우를 좋아하는 현상, 이른바 ‘아저씨 열풍’은 배우 정우성·이정재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영화 <헌트> 개봉 후 각별한 우정이 새삼스레 재조명되면서 ‘청담 부부’라는 별명을 얻은 정우성·이정재는 데뷔 직후나 현재까지, 세대와 시대를 불문하고 사랑을 받아온 스타다.


모르는 이와 커피 한 잔 조차 긴장하게 되는 ‘위험한 세상’…젊은 여성들 안온한 연애 욕망 ‘무해한 남성상’ 인기로 이어져

40대 이상 남성 연예인들의 ‘담백하고 절제된 언행’은 비로소 안전하게 마음껏 좋아할 수 있는 매력으로 다가와


비슷한 연령대의 스타를 좋아하는 것이 보편적이라고 여겨지는 가운데, 이들에 대한 어린 여성 팬들의 지지가 매우 두드러진다. 배우 김남길의 인스타그램은 개설 즉시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를 차지했고, 배우 손석구의 팬들 또한 연령대가 다양하다. 어째서 여성들은 나이 차이가 한참 나는 ‘아저씨’에 열광하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는 그동안 ‘나이 많은 남성’과 ‘어린 여성’을 짝지어주거나, “나이 차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나이 많은 남성이 어린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접근하거나, 이를 허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때 드라마 <도깨비>가 인기를 끌면서, 어린 여성과의 로맨스를 꿈꾼 나이 많은 남성들이 (그 자신은 공유가 아님에도) 망상을 실천으로 옮기려고 한 사례가 온라인상에 넘쳐났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커플이나 부부는 남자가 ‘도둑놈’이라고 불리면서도 ‘능력자’로 여겨진다.


이것은 여성과 남성의 나이와 그에 따른 ‘가치’의 기준이 다른 가부장제와, 어릴수록 상품성이 높다고 취급하며 아동·청소년이 안전할 권리보다 이들을 성적으로 착취할 권리를 더 중시하는 한국 문화의 합작이다. 미디어에서는 꾸준히 나이 많은 남성의 매력을 부각하고, 이들을 친근하고 귀여우며 어딘가 짠하여 챙겨주고 싶은 존재로 연출했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는 이른바 ‘아재 열풍’이다. 한동안 TV와 잡지, 신문 등 각종 매체는 갑작스럽게 ‘아재파탈’, ‘아재 전성시대’ 같은 단어를 쏟아내면서 아저씨들의 매력을 열심히 부각했다. 반짝했다 사라진 신조어 ‘영포티’(젊게 살고 싶어 하는 40대)처럼, ‘아저씨’는 여전히 젊고 매력적이며, ‘그러니까’ 젊은 여성과 맺어지기에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사방에서 전송하는 것이다. 남자는 ‘묵을수록 좋은 와인’이고, 여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25세가 넘어가면 상품성이 없다)라는 헛소리가 오랫동안 그럴 듯한 통찰처럼 떠돌았다.


그런데 최근의 ‘아저씨 선호’ 양상은 앞서 설명한 현상과는 완전히 다르다. 젊은 여성들이 40대 이상의 남자 연예인을 매력적인 남성이라고 인지하고 좋아하는 것은, 여성들에게 그 결정권이 있다. 사회가 아저씨들을 포장해주거나 여성들에게 그 남자들을 떠미는 것이 아니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아저씨 열풍의 한가운데 있는 남성들의 공통점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이들은 우선, ‘요즘 시대’에는 보기 드문 뚜렷한 이목구비를 갖춘 잘생긴 외모와 관리가 잘된 몸의 소유자다. 남자 연예인의 계보를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 치고 들어온 ‘훈남’과 ‘못생겼지만 매력적인’ 계열의 습격으로 정석 미남의 대가 끊겼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고전 미남이 그리운 현대의 여성 팬들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되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는 예측 가능한 부분이지만, 사실 아저씨 열풍의 핵심은 외모보다 ‘태도’다.


인기를 끄는 40대 이상 남성 연예인들에게서 관찰할 수 있는 경향은 어린 여성들의 관심과 호의를 이성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담백하고 절제된 언행이다. 정우성의 경우, 5년 전 중학생 팬이 정우성과 결혼하고 싶다고 보낸 메시지에 “나이 차이는 극복할 수 없단다”라고 딱 잘라 말하며 선을 긋는 모습이 큰 화제였다. 정우성은 빗발치는 여성들의 프러포즈에 철벽을 치다 못해 ‘프러포즈 금지령’을 내렸고, <워크맨>에서 방송인 장성규가 팬 중 한 명과 결혼해주는 게 어떠냐고 농담하자 정색하며 받아주지 않았다. 이동욱은 프메에서 자신을 ‘아저씨나 삼촌이라고 불러도 상관없다’고 말하여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왜? 고개를 돌리면, 이 세상은 아득한 나이 차이에도 굳이, 굳~이 ‘오빠’ 소리를 들으려고 혈안이 된 남성들이 득실거리니까.


영화 <헌트>에서 박평호(이정재 분)와 여대생 캐릭터인 조유정(고윤정 분)이 초기 설정에서는 멜로 라인이었으나, 이정재의 의견으로 삭제되었다는 소식에 팬들이 안심한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불필요한 멜로 라인이나 베드신은 영화 완성도 측면에서도 아쉽지만, 내가 사랑하려던 캐릭터가 ‘자신이 돌봐주는 딸 같은 대학생’에게 성적으로 접근하는 아저씨라면 순식간에 뜨겁던 가슴이 싸늘해지기 때문이다. 아저씨 열풍의 핵심은 역설적이다. ‘어린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안전하게, 마음껏 좋아할 수 있는, 내 것이 될 리 없기에 완전한 ‘나의 아저씨’. 아시겠어요? 요즘 어린 여성들이 아저씨를 좋아한다는 소식에 가슴이 설렌다면, ‘떼잉!’ 거기서부터 탈락입니다. 이는 결국 ‘무해한 남성상’에 대한 열망과도 통한다.


무해한 남성상은 최근 5년 사이 급부상한 수요로, 로맨스에서 남자 주인공이 마초적이고 강압적이던 전통과 결이 다르다. 로맨스의 탈을 쓴 폭력에 지친 여성 소비자들은 ‘대형견 같은 멍뭉이’, ‘지고지순한 연하남’, ‘다정한 조력자’ 역할에 열광한다. <응답하라 1988>의 택이(박보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서준희(정해인), <사내맞선>의 차성훈(김민규), <신입사관 구해령>의 이림(차은우) 등이 이 갈래에 속한다. 최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무해하고 다정한 캐릭터 이준호를 연기한 강태오 배우는 전성기를 맞았으며, 아이돌 그룹 몬스타엑스의 멤버 채형원이 래퍼 이영지가 진행하는 유튜브 콘텐츠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에 출연해 ‘폭력적인 남자는 안 된다’라고 말한 영상은 조회수 900만 이상을 달성했다.


무해함이란 자신의 욕망을 자제하여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윽박지르거나 위협하지 않고 대화할 줄 아는, 기다리고 배려할 줄 아는, 인간적 예의와 호감을 멋대로 판단하지 않는, 폭력과 로맨스를 헷갈리지 않는 것이다.


무해한 남성상의 인기에는 절박한 측면이 있다. 2022년의 이성애자 한국 여성에게 연애, 남성, 구애는 위험하고 두려운 개념이기 때문이다. 남성 페미니스트 기자인 박정훈씨가 쓴 책의 제목은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내인생의책, 2019)이다. 여성들은 그저 인간적으로 친절했다는 이유만으로, 감자탕의 고기를 덜어준 행위가 호감의 표시이니 추행이 성폭력이 아니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세상에 산다. 하루가 멀다고 연인 간의 폭력, 살해, 위협, 불법 촬영 등이 사회면을 장식한다. 신당역에서는 지속적인 스토킹을 하던 남성이 근무 중이던 여성을 살해했으며, 소방대원이 자살 시도를 하던 시민을 구한 후 접근을 시도하고 성추행한 사건도 있다.


모르는 사람과 마시는 커피 한 잔도 긴장하게 되고, 안전하게 이별하는 ‘꿀팁’을 공유하는 것이 여성들의 현실이다. 아저씨 열풍은 이러한 맥락에서, 단순히 ‘나이 많은 남자’가 아니라, ‘나이가 들었음에도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어린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지 않는 최소한의 분별력을 갖춘 남자’를 안전하게 사랑하고 싶은 욕망의 반영이다(정석의 예의, 예를 들면 국수를 소리 내지 않고 먹는 이정재라든가 더치페이나 역차별 따위의 주제로 말씨름 안 해도 되는 매력도 중요한 몫이지만 분량상의 문제로 여기까지만).


최근 조선일보에 실린 천현우씨의 ‘지방총각들도 가정을 꿈꾼다’라는 칼럼이 많은 비판을 받았다. 지방의 남성들이 결혼하기 어려운 현실에 집중하고 이루지 못한 가장의 책임감을 안타까워하느라 정작 지방 여성을 지우게 된 글이다. 그 글의 마지막을 패러디하며 마무리한다. “그러나 행복하고 안온한 연애라는 환상이 사라진 지난한 현실 속에서도, 한국 여성들은 사랑을 꿈꾼다. 스토킹·불법 촬영·성폭력·데이트폭력·‘왜 안 만나줘’ 살인 뉴스가 없는 신문을 보고 퇴근해, 내 집의 현관문을 여는 순간, 나를 맞이할 비폭력적이고 다정한 짝의 환한 미소를 떠올리면서.”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174923?lfrom=twi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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