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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오컬트 언젠가 꾸었던, 레딧괴담 같은 꿈 기록.

옛날에 꾸었던 꿈 기록.


나는 4남매 중 한명이었고 오래간만에 10대였다.(큰오빠-나-여동생-남동생) 배경은 서양이었다.(미국이나...뭐 그랬겠지) 모든 공포영화의 시작이 그렇듯 우리 가족은 대저택으로 이사를 갔다. 저택은 층고가 아주 높은 2층 건물이었다. 1층에는 넓은 응접실이 있었고 응접실 양 옆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1층과 2층 중간에는 넓은 테라스가 있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측벽에 붙은 계단을 올라가다가 테라스로 나가 쉬거나 바깥을 바라볼 수 있었다. 


저택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좋았다. 그러나 형제들은 아이들 특유의 예민한 감각으로, 저택에 시공간이 이상하게 흐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물건들이 없어지거나 스스로 장소를 옮기는 일은 예사였다.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방에서 나오거나 들어가기도 했다. 사람들의 복장은 중세시대부터 근현대까지 다양했다. 그들에게서 공격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가 안 보이는 것 같았으니까. 단 한 명, 소름끼치도록 무섭게 생긴 노파를 제외하고는. 그녀는 불 꺼진 다이닝 룸 구석에 조용히 서서 정확히 나를 쏘아보았던 것이다. 


부모님들은 딱히 별다른 점을 못 느끼는 듯 했다. 대신 그들이 이상해졌다. 다정했던 아버지는 점점 표정이 험악해졌다. 집기를 던져 부수기도 했다. 어머니는 종종 허공에 대고 중얼거렸다. 형제들은 완전히 겁에 질렸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화장실에 간 막내가 비명을 지르며 뛰어와 안겼다. 볼일을 보고 있는데 밖에서 누군가 문을 잠갔다는 것이다. 그는 죽을 힘을 다해 한참 동안 문을 두드렸다고 했다. 하지만 화장실 가까이에 있었던 우리들 중 그 누구도 막내의 울음소리나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결국 큰오빠는 형제들을 끌고 집안 구석구석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한겨울의 칼바람을 뚫고 2층 테라스로 나갔을 때였다. 웬 덩치 큰 흑인 소년이 담벼락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를 돌아 보고는 아주 친절한 태도로 "우리 집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셋째가 "우리 집인데?" 하고 대꾸했다. 큰오빠와 나는 알았다. 소년의 말은 사실이다. 그는 여기 사는 사람이다. 그러나 같은 시간대는 아니었다. 갑자기 방에서 나오거나, 사라져 버리는 사람들처럼.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는 약 4-50년 전 사람인 것 같았다. 갑자기 미래인을 조우한 소년은 잠시 당황했지만, 친구가 없어 외로워하던 차에 잘됐다는 듯 금세 마음을 열었고 우리의 조사에 동참했다. 


다섯 명의 아이들은 지하실, 창고, 구석진 방 등을 수색하며 과거 집을 소유했던 사람들의 흔적을 들추었다. 소년은 (50년 후의) 응접실을 둘러보다가 벽에 붙어있는 크고 낡은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내가 그 그림은 원래부터 여기 있던 거라고 하자, 소년은 멋지다며 자기도 저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워낙 저명한 군인이어서 아들도 군인이 되길 원하신다고 했다. 우리는 씁쓸해 하는 그에게 연민을 느꼈다. 막내가 해맑게 "군인돼서 그림 그리면 되잖아." 하고 말했다. 소년은 푸하하 하고 웃었다. 


뭐 어차피 이건 꿈이고, 이런 풍의 영화가 다 그렇듯 이상현상의 원인은 '주술에 심취한 마녀의 탐욕과 영생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비극 어쩌구저쩌구'였다. 마녀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찾아다니던 중 우리들 앞에 그 노파가 나타나더니 소년을 끌고 가 버렸다. 아마도 그의 시간대와 현재의 시간대를 분리해 버린 것 같았다.(소년과 노파가 구면이었던가?) 우리는 잠시 슬퍼하다가 시간이 없음을 깨닫고 다시 조사에 임했다. 그리고 새로운 단서들을 속속 발견했다. 분명히 텅 비어있었던 벽장에, 웬 책들이 쌓여있는 식이었다. 마치 소년이 과거에서 도와주고 있는 것 같았다. 덕분에 노파를 물리쳤고 저택은 평화로워졌다. 부모님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뜻밖의 방법으로 소년을 다시 만났다. 소년을 그리워하던 셋째가 어느 날 밤 혼자 테라스로 나갔다가, 혼비백산하여 형제들을 불러모았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테라스 창문으로 저택을 들여다보았다. 집안에서는 환한 불빛이 쏟아지고 무도회가 벌어지고 있었다. 번쩍이는 샹들리에, 고급스러운 드레스와 턱시도들... 그때 누군가 계단을 올라왔다. 흑인 청년이었는데 군인인지 제복을 입고 있었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셋째가 나지막이 말했다. "맞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을 느꼈는지 청년이 테라스 쪽을 바라보았다. 걸음이 우뚝 멈췄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청년과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큰오빠보다도 훌쩍 키가 자란 소년은 늠름했다. 평안한 표정을 보니 군인으로서의 생활도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큰오빠부터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마주친 그는 막내를 보자마자 씩 웃으며 응접실 쪽을 가리켰다. 벽난로 위, 가장 눈에 잘 보이는 곳에 큰 액자가 걸려 있었다. 탄성이 나올 만큼 화려한 그림이었다. 이제는 누렇게 색이 바랜. "저 애가 그린 거였구나." 큰오빠가 말했다. 


청년이 고개를 돌렸다. 응접실에서 누군가 그를 부른 모양이었다. 그는 잔뜩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더니, 짧게 손인사를 했다. 우리도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그는 다시 미소를 지어보이곤 계단을 내려갔다. 동시에 불이 꺼지듯 환영도 사라졌다. 눈앞에 다시 나타난 것은 심심한 인테리어의 응접실과 낡은 그림 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둑하고 익숙한 풍경을 향해 뛰어들어갔다.


출처 :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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