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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무비줌인] ‘비상선언’ 속 신파가 그렇게 나쁩니까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804/114799493/1


납득 가능한 수준인가 눈 뜨고 못 볼 수준인가. 3일 개봉한 영화 ‘비상선언’을 두고 신파 논란이 뜨겁다. 개봉 전 시사회로 영화를 접한 관객 상당수는 “신파가 과도하다”고 지적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신파 수위가 대체 어느 정도냐”는 질문이 쏟아진다. “‘신과 함께’ ‘7번방의 선물’ 정도인가요?”라는 질문도 많다. ‘신과 함께’ 시리즈, ‘7번방의 선물’, ‘국제시장’, ‘해운대’는 ‘1000만 영화’라는 영예와 별개로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 한국 영화계에 억지·과잉 신파를 퍼뜨린 영화라는 불명예스러운 딱지가 붙어 있다. 신파와 ‘절친’인 클리셰와의 상승 작용까지 일으켰으니 “영화 좀 본다”는 이들의 욕받이가 될 만도 하다.


‘비상선언’은 그런 면에서 조금 억울할 듯하다. 이 영화는 하와이행 비행기 내에 치명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바이러스가 퍼지는 이야기를 다룬 재난영화다. 한재림 감독은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테러범을 알려주는 등 항공 재난영화의 클리셰에 편승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정부 각 부처 고위 관계자들은 각자 할 수 있는 대응을 신속하게 해낸다. 기존 재난영화처럼 무능한 모습을 부각해 분노를 유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공식 깨기로만 일관하진 않는다. 그랬다가 상업영화의 미덕인 최대 다수의 공감을 얻는 대신 감독만의 독창적인 성에 갇혀 버리는 ‘영화적 재난’이 발생할 수 있다. 흥행 ‘안전장치’, 신파를 일정 부분 활용하는 등 재난영화의 공식을 일부 따라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관객들이 신파로 꼽는 대표적인 장면은 승객들이 가족에게 그간 하지 못한 말을 영상통화로 전하는 장면. 관객에게 “울어라”라며 주문하는 장면 같지만 9·11테러 등 참사 당시 희생자들이 실제로 한 행동이다. 관객을 울리려고 억지로 만들어냈다기보다 현실을 충실히 반영한 것. 참사 희생자들의 마지막 메시지를 실제 들어보면 ‘비상선언’ 승객들 연기는 과하지 않다.


게다가 재난영화는 장르 특성상 사람 이야기가 반이다. 재난 발생 과정을 묘사하는 것이 한 축이라면 승객과 지상에 있는 가족의 고군분투 등 드라마를 보여주는 건 다른 한 축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은 삶이 곧 신파가 되는 상황이다. 가족이 떠오르고 눈물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가족에게 인사를 남기는 장면 등을 들어내야 할까. 승객들의 연대 등 신파로 보일 만한 사람 이야기를 모두 배제했다면 정반대 평가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재난만 있고 사람은 없는 반쪽짜리 재난영화”라는 혹평 말이다. 슬픈 장면이 실종되고 모두가 씩씩하거나 무반응한 재난영화는 오히려 괴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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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영화가 성공하려면 가족 단위 관객을 모으기 위한 영화적 장치를 곳곳에 넣는 전략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영화 관람 경험이 많은 젊은 관객이 진부한 신파라며 혐오하는 장면이 노년층이나 어린 관객에게는 새롭거나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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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비상선언’은 신파적 요소를 제외한 모든 것이 완벽한 영화라고 보긴 어렵다. ‘뻔하되 뻔하지 않게’ 이끌어 가려 한 연출력과 뛰어난 기술적 완성도 등 장점이 있는 반면 후반부의 다소 늘어지는 전개, 정치적인 오해를 부를 장면 등 아쉬운 점도 있다. 그럼에도 영화의 일부분에 불과한 신파에 유독 관심과 비판이 집중되며 영화가 ‘신파 프레임’에 갇힌 이유는 뭘까. 역대 1000만 한국 영화 상당수가 보여준 억지·과잉 신파에 당하고 당한 나머지 관객들에게 개연성을 떠나 조금의 신파도 용납하지 못하는 ‘신파포비아’가 생겨버린 건 아닐지 생각해 볼 일이다. 물론 이는 관객 탓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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