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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네이트판] 연세 많은 시아버님의 화려한 멘트들

쌍둥이 31주이고 어제도 시댁 생신있어 식당 다녀왔어요. 우리 연세 많은 시아버님 식사하시다말고 뜬금없이

"우리 며느리 아가들 젖 맥일게냐? 맥여야 한다. 요즘 젊은 엄마들이 몸매 때문에 젖 안 맥인다고 해서 걱정이되서 하는 말이다. 젖 맥여라 꼭. 젖이란 게..."

저 얼굴 빨개지며

"아버님 일단 젖 말고 모유라고 좀 해 주시겠어요? 호호호;;;"

남편 화들짝 놀라

"아부지, 저희가 부모니 어련히 알아서 좋은 거 안 먹이겠어요? 그런 말씀 안 하셔도 되요. 모유가 나오면 먹이는 거고 안 나오면 분유 먹이는 거고요."

어머님 당황하셔서

"아이고 아부지가 우리 며느리가 편해서 그러시나보다;;;"

원래 어색하면 쓸데없는 농담 같은 걸로 분위기 업하려고 하시는데 재미 한 개도 없고 결국 다운되거든요. 40년대 생이시고 젊을 적에 전쟁도 나가시고 외국에 돈 벌러 가시고 식구 먹여 살리느라 육아라곤 한 개도 못하셨대요. 나갔다 들어오면 애가 하나 늘어 기어다니고 있고 평생 어머님과 네남매 뒷바라지로 살아온 분이긴 해요. 가족 모두 그런 분위기에서 자라 늘 아버님 말씀 하실 때 긴장하고 제지하고 이상하고 고리타분한 말씀 하시면 뭐라 하긴 하는데 눈치도 좀 없으셔서 모르세요. 옛날 분들 습관 그래요...고치기 힘드시겠죠.

집에 돌아와 "아버님이 나 제왕vs자분 가지고도 간섭하시는 건 아니겠지?" 했다가 남편 큰소리치며

"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라고 뭘 마음에 담아두냐고! 원래 그러시는 거 알면서 내가 충분히 아부지에게 뭐라 하지 않았어? 왜 다 끝난 얘기로 예민하게 구는데!"

우씨, 괜히 저한테 뭐라 하는 거에요. 내가 언급 할 걸 알고 준비한 것처럼... 원래 말투 엄청 다정해요. 그 다정함에 결혼 선택했어요. 근데 자기 집안 이야기만 하면 엄청엄청 예민해져요. 이유 아시는 분?? 하루종일 급 우울해져서 임신 한 게 처음으로 후회 되었네요. 우리 둥이들 태동도 막 귀찮게 느껴지고 엄마 아픈데 너네까지 왜구래. 아파 이것들아. 우씨 ㅜㅜ 남편도 꼴보기 시려ㅠㅠ

저희 아빠 엄마 여의고 시골에서 혼자 사시거든요. 여러해 동안 꾸준히 집 고쳐서 이제 낡은 시골집 살만 하게 손주들 와도 창피하지 않게 예쁘게 고쳐 생활하고 계시고 심지어 평생 드시던 술도 대상포진 때문에 단번에 끊으셨어요. 아빠지만 넘 기특(?)하고 남자 혼자 밥 해 먹고 사시는 거 짠하고 늘 신경 쓰이지만 누구보다 걱정없이 행복하게 스트레스 없이 잘 살고 계세요.

저번 휴가 때 시부모님 모시고 아빠에게 갔어요. 저희 아버님 눈으로 집 한 번 쫘악 훝으시더니 왈,

"사돈 어른, 문지방은 이렇게 하시면 안 되고요. 잘못된 방법입니다. 저기 마루도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게 더 좋구요. 천장 여긴 많이 삐뚤게 되었네요. 이 나무를 다룰때는 말입니다. 어쩌고 저쩌고... 혼자 사시니 신경 쓸 일이 많으시지요. 힘드시고요. 이런 건 혼자 안 됩니다. 참 안 되셨습니다. 마음이 안 좋고요. 혼자 얼마나 외로우십니까. 술 끊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같이 좀 마셔야 하는데 혼자 마시려니 심심하네요. 그나저나 술은 정말 잘 끊으셨어요. 술이란 게 말입니다. 과하면 인간관계 끊기고 개가 되고 인사불성에...."

아니 술 끊으셨다니까요? 울아빠 처음엔 연세 차이가 많이 나니(+11살 연장자)예예- 하고 웃으며 들으시다가 나중엔 의아한 표정이 되시더니 곧 파악하신 듯 뭐 잊은 듯 가지러 가고 또 채소따위 뽑으러 가고 하시더구요 ㅎㅎㅎㅎㅎ 그 와중에도 개의치 않고 아버님 울아빠 앉을 때마다 붙잡고 훈계, 충고, 조언을 너무도 아끼지 않으시며 아무말 대잔치를 하시는데 저엉말 보는 사람조차 너어무 힘들더라구요. 나이가 어려도 이래뵈도 울아빠 65세 넘은 할아버지에요. 손녀도 있고요. 행복하게 잘 사시는분이에요. 불쌍한 분 아녜요ㅠㅠ 담날 아빠 웃으며 그러시더라구요. "어르신이 내가 혼자 사니 참 불쌍한갑다..." "아냐 아빠 원래 말씀을 좀 아이참. 암튼 그러셔..." " 아이다 개안타. 연세 들어 그런 걸 우짜겠노" 아빠께 너무 죄송했어요ㅜㅜ


눈치 없으신대다가 연세 드셔 가물가물 하신지 저 부를 때 "OO야~" 하시는데 그거 제 이름 아니거든요. 이혼한 형 그니까 첫 형수 이름이래요. 전 웃어 넘기면서 "아버님 전 00랍니다" 전 당사자 아니라 괜찮은데 현재 형수는 그 이름으로 툭하면 불리우시다가 재혼 후 전처랑 여러가지 일로 겹쳐 멘탈 부서지고 정신과 다니고 한동안 시댁 안 오셨어요. 손녀 낳고 거의 안 보여드렸는데 뭐 아버님이 자초한 일 아닌가 싶기도 해요. 이제 백일 된 형수 딸 그니까 손녀 데리고 안방 침대 계시다 그 짧은 순간 잠드셔서 애 떨어트린 적도 있으시고요. (쿵!! 소리에 저까지 트라우마 생겼어요. 다짐하게 되더라구요. 나중에 아버님 손에 우리 둥이들 절대 네이버...)

하루는 맛집 대기하며 뜨개질 하고 있는데 친해지고 싶으신지 "OO야.(제 이름 아녜요) 뜨개질이란 건 말이다. 할 때 이렇게 손에 힘을 주고 하면 전체적으로 옷이 작아지니 힘 조절을 잘해야 한다."
너어무 웃겨서 "아버님 우왕 뜨개질도 할 줄 아세요? 우와앙" 해버렸다니까요. 어디서 줏어 들은 거 본인이 아는 게 전부인 분이세요. 잘 모르는 분야는 이야기 안 하셨음 좋겠는데 꼭 한 말씀 얹으시거든요. 그 시절 분들이 그런 점이 있다는 건 알지만 저희 아빠 생각이 젊은편이고 사고가 열려있고 상식적이라 그런 아빠 밑에 자라 그런지 도통 이해가 안되네요. 옆에 사람을 피곤? 힘들게 하시는 것 같아요. 누님 말로는 어머님은 아버님과 단 둘이 있으시면 거의 대화를 안 하신대요. 그래서 누님이 큰 개를 키우시라고 데리고 온 것 같구요. 그나마 개 키우며 뭐라도 대화를 나누실테니까요. 근데 그 개도 얼마전 아버님 술 드시고 입주변 털이 유난히 길어보였는지 물 마실 때 자꾸 젖어 거추장스러우셨는지 가위로 다듬다가 혀 내밀 때 싹.뚝. 혀 잘라버리셨어요. 다행히 죽진 않았어요. 지금은 혀모양 많이 돌아왔는데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대요. 누님은 이후 한 달은 우느라 눈 부어 지낸 거 같아요. 아버님 가만히 계시지않고 자꾸 부산히 움직이는 스타일이세요. 가족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 그러신건데 일 그만두시고 더더 부지런해지셨더라고요. 옥상 화초도 가꾸고 장도 담드고 술도 담그고 머리카락 줍고 바닥에 먼지 한 톨까지 저 있을 때도 부지런히 계속 주으세요.

한 번은 새벽이었어요. 6시 좀 넘었나. 남편 출근 전에 벨이 울리는 거에요. 그것도 아버님에게요. 둘 다 잠결에 넘 화들짝 놀라 받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집 앞 사거리라고 잠깐 밑으로 내려오라고 하시는 거에요.(며느리에겐 들키면 안되는 뭔가인가...?)허걱! 이건 분명 사고다. 아버님께 혹은 어머니께 말 못할 무슨 사고가 생긴 것이다. 오빠 얼릉 다녀와 괜찮을거야 긴장하지말고! 사색이 되서 나간 남편 기다리며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 왔다갔다 손톱 물어뜯고... 한 이십여분 뒤 오빠가 돌아왔어요(시간은 또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

"무슨 일이야. 오빠 이건 또 뭐고"

"으응~ 하하하하 아부지가 새벽시장 가서 토마토를 사오셨네. 며느리 먹이겠다고 너랑 약속한 거 지키신다고...하 참나...."

"무슨 소리야. 내가 언... "

순간 소름이 쫘악...제가 며칠 전 지나가는 말로 아버님 짭짤이 토마토가 그렇게 맛있대요. 드셔보셨어요? 먹고 싶냐? 네!!! 그래 내가 조만간 우리 00이 사줘야겠네(감사하게도 이 땐 제 이름으로 불러주셨어요) 이런 대화 했던 게 스치더라구요. 아버님 무릎 불편하신데 저희집 언덕이라 아들보고 내려오라고 하신 거였구요. 새벽시장 다녀오신 건 좋은데에 아니 그래도오 ㅠㅠㅜ 저희가 그 새벽에 얼마나 놀랄지는 생각을 왜왜왜 안 하시냐고요. 왜 당신 맘 급한 것만 생각해요 왜 ㅠㅠ 저희보고 죄송해 죽으라는 건가요. 허어어엉ㅠㅠ

남편 오래 걸린 게 아버님 없어질 때까지 뒷모습 쳐다보다 왔대요. 하도 어이없고 짠해서요.


오늘 남편 본인이 못되게 이야기했다고 잘못했다고 제게 전화해 사과해서 풀어주긴(?)했네요. "오빠 때문에 속상했지? 기분 풀어줘. 미안해 담부턴 말 예쁘게 할게."


아버님 만나면 늘 무슨 말씀으로 당황케 하실지불안불안한 마음이 들어요. 약간 노이로제랄까요. 저 입덧 한참 할 때 음식냄새도 잘 못 맡고 구토 심할 때라 어머니가 부엌에 오지 말라셔서 상 펴고 앉아있었어요. 그나마 음식 몇 개가 잘 먹히길래 열심히 먹고 있는데 절 흐믓하게 바라보시며 하신 말씀. "가마안히 앉아서 시어머니가 차려주는 밥 먹으니까 편하고 좋지~?" 순간 정적. 까악까악.....이거 제가 알아요. 웃기려고 하신 말씀이에요. 근데 안 웃겨요. 아무도 안 웃었어요. 하아. 저도 아무렇지 않으려 한 귀로 듣고 흘리다가도 파바박 꽃힐 때가 있음은 어쩔 수 없네요. 같이 있음 불편해요. 조마조마하구요. 걍 이러고 살아야 하겠죠? 방법이 있을까요 ㅠㅠ 네남매 중 막둥이인 남편은 이 와중에 효자에요. 울아빠에게도 본인 부모에게 하듯이 하기 때문에 뭐라고도 못하네요.

휴우~ 오늘 날씨도 넘 구리고 몸도 움직이기 싫고 요가 선생님 수업 담주로 미루고 침대랑 한 몸이요. ㅠㅠ 스트레스는 이렇게 은연 중에 오나봐요. 어머님이 인자하시고 전형적인 교과서 나오는 엄마 같은 분이라 걱정이 크게 없었는데 둥이들 나올 때가 되니 아버님 때문에 슬슬 걱정이 되네요. 아버님의 '너희들이 허락한다면 우리가 잘 키워줄게. 동네로 이사오거라' 이 말씀이 너무 무시무시하게 다가왔었거든요. 육아 한 번 안 해 보신분이... 막 그런 상상 있잖아요. 우리 잠시 나간 사이 아가들 베넷머리 바리깡으로 밀어버리시고 '우리 때는 다 깎아줬다 그래야 잘 자란다 이 머리라는 것은...' 이러실 꺼 같은... 후덜덜. 어차피 시어머님도 연세 드셔서 게다가 요즘 기력도 빠지시고 아주 잠시라도 아가들 맡길 생각은 애저녁에 접었답니다. 그냥 조리원 나오면 산후조리사분들 최대 기간으로 모시고 이후엔 낮에 혼자 해야죠. 할 수 있...겠죠?? 남편이 많이 도와주는 사람이긴 한데 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여러분은 시댁과 특히 연세 많은 시아버님과 평안 하신가요...

모쪼록 긴 썰 읽어주셔 감사해요


https://m.pann.nate.com/talk/366735627?currMenu=talker&order=RAN&rankingType=total&page=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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