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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펌] 마리 앙투아네트의 애인

한스 악셀 폰 페르젠

스웨덴 귀족출신으로 마리 앙투아네트의 애인
당시 미남으로 유명했다고 함

마리 앙투아네트의 남편 루이 16세

내성적이고 무뚝뚝한 성격으로 밝고 활달한 성격의 마리와 정반대의 성격이었지만 둘은 서로 존중하며 결혼생활하였다고 함

둘은 결혼 후 7년동안 잠자리를 갖지 못했는데 이유는 루이가 발기 부전으로 동침을 기피했기 때문

왕비로써 후계자를 낳는게 가장 중요한 시대였기때문에 왕실과 귀족은 물론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도 빨리 아이를 낳으라고 닥달하고 호시탐탐하게 왕위를 노리는 루이의 동생들때문에 마리는 스트레스를 받았음
결혼 초반 파티와 유흥에 빠진 것도 아내에 대한 미안함때문에 루이가 허락해준 것도 있음

오랫동안 아이가 없자 루이 16세는 남자 구실 못하고 성불구자라는 소문이 나돌았다고 함

결국 마리의 오빠 요제프 2세가 프랑스를 방문하면서 조언을 통해 루이는 치료를 받게 되고 7년만에 부부는 합궁을 하게됨
합궁 후에 마리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 인생 최대의 행복에 잠겨 있어요”라는 내용이 있었다고(7년만에 합방하기는 했지만 좋았나봄ㅋㅋㅋ)

그후 둘은 2남 2녀를 낳았음

마리는 잘생긴 페르젠과 사랑에 빠졌고 육체적 관계가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나, 왕비와 페르젠 사이에는 깊은 정신적 사랑이 있었다는 증거가 많이 남아 있다고 함
페르젠은 마리가 모성애 깊은 어머니라고 생각했다고 함

페르젠은 결혼 하지 않고 독신으로 남았지만 마리 이외에 많은 정부들이 있었다고 함
루이 16세는 마리와 페르젠의 관계를 알았지만 눈 감아줬다고 하고 여느 프랑스 왕과 다르게 정부를 두지 않았음

프랑스 혁명 후 국왕 일가의 오스트리아로의 도주를 주도적으로 계획한 사람도 페르젠이었음
페르젠은 엄청난 부자 귀족이었는데 이때 도주할때 든 비용만 150만 리브르(약 200억원) 정도였다고 함
결국 바렌에서 국왕 일가는 붙잡히고 루이와 마리는 단두대에서 처형당함
페르젠은 이 소식을 듣고 절망했고 냉소적이고 민중에게 잔인한 태도를 가진 성격으로 변했다고 함

살아남은 마리의 딸 마리 테레즈가 석방된 후에 페르젠은 재산을 어느 정도 찾도록 도와주기도 했다고 함

아마도 페르젠이 제일 잘 알려진 작품같은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 (초상화보다 미화가 좀 심해....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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